오후 5시 북촌에 ‘고요한 밤’이 찾아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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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투어리즘’에 팔 걷은 종로구, 1일부터 관광객 방문시간 제한
정주권 침해로 북촌 주민들 떠나…‘레드존’ 출입 땐 과태료 10만 원
“통행 제한 시간 너무 일러” 지적도

1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북촌 한옥마을에서 노란색 조끼를 입은 ‘북촌 지킴이’가 관광객 출입 가능 시간(오전 10시∼오후 5시)을 알리는 조끼를 입고 피켓을 들고 있다. 일요일에는 출입이 전면 제한된다. 종로구는 북촌 특별관리지역(북촌로 11길 일대)에 대해 1일부터 방문 시간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Time is up. Please leave by 5 o’clock!(시간이 끝났습니다. 5시까지 떠나주세요!)”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 저녁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는 오후 5시가 가까워지자 피켓을 든 계도 요원들이 관광객들에게 시간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피켓에는 ‘관광객 방문시간 제한구역. 17:00부터 익일 10:00까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계도요원의 안내에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던 관광객들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하나둘씩 골목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제 막 도착한 관광객 일부는 입장을 저지당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10분이 지나자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던 북촌 골목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 관광객 방문시간 제한 시작한 북촌

외국인 관광객들의 서울 방문 필수코스가 된 북촌한옥마을이 고요해진 이유는 종로구가 이달 1일부터 ‘관광객 방문시간 제한 정책’을 시범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구가 올 7월 전국 최초로 북촌한옥마을 일대를 관광진흥법에 따른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한 데에 따른 조치다.

종로구는 2010년대부터 북촌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점차 늘어나며 이른바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으로 몸살을 앓는 대표 지역이 됐다. 이에 구는 2018년부터 거주민들의 보호를 위해 소음을 통제하는 ‘북촌 지킴이’ 등을 두고 정숙 관광을 유도했지만, 지속적인 관광객 유입으로 인한 소음 발생과 쓰레기 투기 등이 계속됐다.

이날 만난 한 계도요원은 “6년이 넘도록 관광객들을 계도해 왔지만, ‘북촌랜드’라 불러도 될 정도로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며 주민들의 정주권이 지켜지지 못했다”며 “어제 오전 10시에는 한옥마을 방문시간 제한 해제를 기다리는 관광객 150여 명이 줄을 지어 기다리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동아일보 취재진이 북촌한옥마을의 건축물대장을 조회해 본 결과 관광객이 주로 찾는 북촌로 11로 일대의 한옥 18채 중 실제로 주민이 남아 살고 있는 곳은 단 3채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한옥 숙소, 사진 스튜디오, 한옥 체험업 등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해당 구간은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주거용 한옥 밀집 지역으로, 구가 ‘레드존’으로 이름 붙여 관광객 출입을 통제하는 구간의 일부다.

구 관계자는 “기존에는 해당 구간에도 대부분 거주민이 살았지만, 지속적인 정주권 침해로 인해 많은 주민들이 떠났다”며 “더 많은 주민이 삶의 터전을 떠나지 않도록 단속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구는 내년 2월까지 계도기간을 거친 후 3월부터 본격적으로 단속에 나선다. 이때부터는 제한 시간에 레드존을 출입하면 10만 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이날 오후 4시 58분경 북촌한옥마을을 찾았다가 입장을 제한당한 독일 관광객 니콜라 에네글 씨(31)는 “오후 5시부터 입장이 제한되는지 몰랐다”면서도 “이곳에 사는 주민들도 있으니 통행 통제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내일 좀 더 빨리 오겠다”고 말했다.

부모님, 자녀들과 함께 북촌에 3대째 살고 있다는 고남철 씨(48)는 “20년 전만 해도 정말 조용했던 동네가 관광객이 몰리며 고성, 캐리어 끄는 소리 등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지경이 됐다”며 “통행시간 제한이 생겨 이제는 조금이나마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부모님도 좋아하신다”고 말했다.

● 상인들과 상생 방법은 고민

한편 북촌한옥마을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상인들과의 상생법은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북촌에서 도자기 공방을 운영하는 상인 이모 씨(56)는 “가게를 오후 8시까지 여는데 오후 5시부터 관광객 통행을 막는 건 너무 이르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폐업 위기에 놓인 소상공인들과 공생할 방법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구 관계자는 “오후 5시 이후라고 하더라도 한옥마을 내 식당이나 가게를 찾아가는 관광객은 확인을 거친 후 통행을 허용하고 있다”며 “내년 3월 본격적인 단속을 시작하기 전 미비점은 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촌한옥마을#오버투어리즘#상인 상생#소음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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