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협력단 사업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일할 때 아프간 전쟁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포탄이 날아다니고 생사에 갈림길에 섰을 때 느꼈던 정신적인 공포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전쟁을 겪으면서 심각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왔던 것 같아요.”
경상북도 예천에서 ‘생텀마을’이라는 힐링 공간을 운영 중인 김민성(42) 대표는 2일 기자와 만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예천까지 이른 긴 인생 여정을 털어놓았다. 전쟁이 준 상처로부터 몸과 마음의 치유와 평화를 찾아 헤맨 쉽지 않은 삶의 굽이였다.
몸과 마음이 무기력한 상태로 귀국한 그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명상, 태극권으로 몸을 조금씩 추스르면서 서서히 회복을 했고 예천에 자리 잡으면서 평온을 얻었다. 자신에게 태극권을 가르쳐 줬던 선배들이 우연한 기회에 예천에 자리 잡으면서 자신도 자주 오게 됐고, 회복 불가능해 보였던 전쟁 트라우마도 천천히 나아졌다고 한다.
새로운 인생의 목표도 얻었다. 소백산 국립공원 아래 천혜의 자연을 보존하고 있는 예천에서 본인이 직접 체험한 ‘힐링’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겠다는 의욕이 생긴 것. 성스러운 장소(SANCTUM)라는 영어를 넣어 지은 ‘생텀마을’을 기획해 2022년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지원사업에 응모해 당선됐다. 지원받은 사업비로 사무실과 숙소 등을 마련하고 청년들이 찾아와 쉬고 놀며 치유 받고 새로운 인생을 기획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이제 만 3년째다.
기자가 방문한 날에도 ‘이상한 나라의 웰니스’라는 주제로 오후 내내 행사가 진행됐다. 생텀마을이 지난 3년간 예천에서 진행한 웰니스 활동을 돌아보고, 지역 자원을 활용한 웰니스의 가치와 가능성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웰니스(Wellness)는 웰빙(잘 사는 것)과 건강(fitness)을 결합한 합성어로, 단순히 몸이 건강한 상태를 넘어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이 모두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행사는 황종규 동양대 교수의 ‘로컬 웰니스 강연’, 지역 특산물로 만든 ‘웰니스 다이닝’ 시식, 김민성 생텀마을 대표의 ‘움직임 명상’, 공영환 음악 감독의 ‘예천 사운드 명상’ 순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는 20여 명으로 서울을 비롯해 다양한 지역에서 힐링을 체험하기 위해 모였다. 참가자들은 SNS나 지인의 소개로 생텀마을을 알게 됐고 힐링을 체험하기 위해 먼 거리를 한걸음에 달려왔다고 했다.
황종규 교수는 현재 대한민국의 양극화 문제를 꼬집으며, 행복지수가 높은 북유럽 국가와의 비교를 통해 웰니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고령화 사회로 갈수록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힐링 활동이 필요하며, 특히 청년들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비교에 속박에서 벗어나 다양한 지역에서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자연에서 치유 받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김민성 대표는 자신을 치유할 수 있게 도와준 명상 프로그램을 참가자들에게 교육했다. ‘움직임 명상’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몸을 움직임으로써 살아 숨 쉰다는 것을 깨닫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가 수련을 오래 했다는 한 참가자는 “요가와는 좀 다르지만, 몸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심연 깊은 곳에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힐링이 됐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끝으로 공영환 음악 감독의 명상 음악 감상이 이어졌다. 생텀마을 뒷산 정상으로 오르는 산길 골짜기에 자리를 잡고, 나눠준 휴대용 녹음기와 연결된 헤드폰으로 소리에 집중했다. 헤드폰을 착용하니 산골짜기를 지나는 바람 소리, 새소리가 명료하고 크게 들렸으며 명상 음악과 어우러져 평온한 느낌을 줬다. 참가자들은 눈을 감고 자연에 소리에 집중하면서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이날 행사는 황종규 교수의 강연, 김민성 대표의 움직임 명상, 공영환 감독의 명상 음악 감상으로 이어지며, 짜임새 있는 탄탄한 구성을 보였다. 이론적인 설명을 듣고, 직접 몸을 움직인 뒤 음악 감상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채로운 구성을 선보였다.
행사 참가자 전혜승씨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몸과 마음이 치유되고 충전됨을 느꼈다”라고 소감을 밝히며 “특히 이곳은 도심에서 흔하게 들리는 소음이 전혀 없고, 고요함 속에서 자연에 소리를 들을 수 있어 특별히 좋았다”라고 덧붙였다.
행사 일정이 끝나고 김민성 대표와 마주 앉았다. 김 대표는 오늘 행사를 통해 참가자들에게 힐링을 줄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고 했다. 자신을 치유했던 예천에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 행복과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행안부 지원사업이 끝나더라도 청년들을 대상으로 ‘치유 프로그램’을 꾸준하게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오늘처럼 몸과 마음을 동시에 돌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치유가 필요한 청년들’을 위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쳐보고 싶다고 말했다.
“예천은 정말 놀라운 곳이에요. 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느껴지죠. 저를 절망에서 구한 이곳에서 청년들을 위해 열심히 일해 볼 겁니다. 치유를 나누는 삶을 위해 응원해 주세요” 활짝 웃는 김 대표의 얼굴에서 아프간 전쟁의 악몽은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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