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오후 6시 반경 경기 고양시의 한 네트워크 미용의원. 지하철역 인근 빌딩 1개 층을 모두 사용하는 이곳에 들어서자 백화점 고객센터처럼 꾸며진 접수 공간이 나타났다. 접수가 끝나자 5분 만에 나타난 상담실장은 기자의 피부를 보며 몇 가지 시술을 추천했다. “미리 생각해 놓은 게 있다”고 하자 해당 시술 비용 14만9000원을 결제하라고 했다.
이후 안내를 받고 시술실로 이동해 병상에 눕자 3분가량 지난 후 의사가 나타났다. 의사는 “고주파 시술 맞느냐”고 묻더니 기기를 가동해 약 10분 동안 얼굴 지방 세포를 줄이는 시술을 진행한 뒤 방을 나갔다. 이어 바로 옆 시술실로 이동해 5분가량 얼굴에 탄력을 더해 준다는 다른 고주파 시술을 받았다.
최근 미용성형 업계에선 전국적으로 활동하는 ‘네트워크 미용의원’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날 기자가 찾은 곳도 전국에 지점 30여 곳을 둔 미용의원이었는데 ‘공장식 저가 시술’을 내세워 고객을 끌어들이는 곳으로 업계에서 유명하다. 문제는 네트워크 의원이 고액의 급여를 내세우며 일반의를 흡수하는 탓에 ‘미용성형 쏠림 현상’과 ‘필수의료 고사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월급 1500만원” 일반의 데려가… “영상 하나만 보고 필러 시술도”
〈하〉 공장식 ‘네트워크 미용의원’ 확산 가격 절반 낮추고 시술 시간 최소화… 지점 수십 곳 공장식 박리다매 운영 갓 면허 딴 일반의도 시술에 투입… 사직 전공의들도 영입 타깃으로 “필수의료 의사 탈출구 방치 안돼”
올해 8월 28일 서울 강남구의 한 네트워크 미용의원.
번화가 대형 빌딩에 있는 로비에 들어서자 3개 층이 내부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기자가 “처음 왔다”고 하자 접수대에선 “30분가량 기다려 달라”는 말이 돌아왔다. 대기실에 앉아 있으니 영어, 일본어, 러시아어 등이 들렸다. 일대일 상담에서 “얼굴을 깨끗하게 만들고 싶다”고 하자 상담실장은 피부에 수분을 공급하는 미용 시술을 권했다. 3만8500원을 결제하자 별도 공간으로 안내해 시술을 진행했는데 시술 시간은 20분가량이었다.
● “의대 졸업만 하면 월 1500만 원 지급”
네트워크 미용의원은 많게는 수십 개의 지점이 같은 브랜드명을 사용하는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운영된다. 장비를 공동 구매하고 시술 절차를 표준화하면서 단가를 낮춰 경쟁력을 확보한다. 미용의료 애플리케이션(앱)에 따르면 턱 보톡스 주사의 경우 평균 시술 가격이 약 3만2000원인데 한 네트워크 미용의원은 절반 남짓인 1만9000원을 받고 있었다. 미용의료는 대부분 비급여이다 보니 국민건강보험에서 보전을 안 받는 대신 의사가 시술비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피부과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를 고용하고, 의사 투입 시간을 최소화하며 비용을 절감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명문대 출신 의료진과 세련된 인테리어, 야간 진료 등을 강조하는 마케팅도 공동으로 진행한다.
네트워크 미용의원에서 피부 진단과 시술 추천, 결제 등은 모두 상담실장이 맡는다. 의사는 상담실장으로부터 “1번 방으로 와 달라”는 식의 요청을 받고 간단한 확인을 거친 후 주사를 놓거나 시술을 한다. 의료기기가 아닌 경우는 피부관리사나 간호조무사 등이 시술을 맡으며 컨베이어 벨트처럼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한 미용의원 관계자는 “의사는 매뉴얼대로 시술만 하면 되니 큰 부담이 없다. 부작용이 발생하더라도 상담실장이 불만 대응과 사후 진료, 환불 등 전 과정을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네트워크 미용의원은 의사 국가시험(국시)을 갓 통과한 일반의를 고용하고 최근까지 월 1000만∼1500만 원을 줬다. 또 지점을 차리길 원하는 의사가 있으면 설립과 운영, 홍보 등을 맡아 지원해 준다. 의료계에선 일반의 의원 의사 연봉이 2010년 1억530만 원에서 2020년 1억9555만 원으로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난 배경에 네트워크 의원이 있다는 분석이 많다.
네트워크 미용의원에서 근무했던 일반의 박모 씨는 “의대만 나오면 네트워크 의원에서 일하며 월 1500만 원을 받을 수 있는데 왜 힘들게 수련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국시에 합격한 후 전문과 수련을 택한 신규 레지던트는 2013년 3414명에서 2022년 2877명으로 줄었다. 최근에는 병원을 이탈한 사직 전공의(인턴, 레지던트)가 네트워크 미용의원의 새로운 영입 타깃이 되고 있다.
● “영상 하나 보고 진료 투입되기도”
네트워크 미용의원의 경우 ‘박리다매’ 방식이다 보니 회전율을 높여 단시간에 많은 환자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의사들이 고객의 상황을 면밀하게 체크하지 못한 채 시술하는 경우가 많다. 한 피부과 전문의는 “병원에선 환자의 과거 진료 이력을 보고 현 상태에 대한 설명을 들은 다음 그에 맞는 처방을 하는데 네트워크 미용의원에는 그런 과정이 없기 때문에 리스크가 크다”고 설명했다.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한 일반의들이 시술에 투입되기도 한다. 네트워크 미용의원에서 1년간 근무했던 김모 씨는 “간단한 튜토리얼 영상 한 개만 보여주고 환자 이마에 필러 주사를 놓게 했다”며 “필러는 피부와 유사한 물질을 주사기로 삽입하는 것인데 이마에 주사할 경우 실명 위험이 있어 아찔했다”고 말했다. 네트워크 미용의원에서 7개월가량 월급을 받으며 일했던 일반의 이모 씨(28)는 “대표가 주사기 재사용을 지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패키지로 구매하면 더 저렴하다”며 상담실장이 과잉 시술을 유도하는 경우도 많다.
네트워크 의원을 둘러싼 불법 논란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모회사 격인 병원경영지원회사(MSO)가 실질적으로 소유하면서 ‘의료인만 병원을 경영할 수 있고, 어느 의료인도 병원 둘 이상을 경영할 수 없다’는 현행법을 어기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MSO는 지점 개원 시 투입 자본을 지점 대표와 일정 비율로 나눠 투자하는 대신 매출의 10% 안팎을 마케팅비 명목으로 받아간다. 법률사무소 해울 신현호 변호사는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병원 매출의 일정 비율을 상시적으로 가져갈 경우 불법의 소지가 있다”고 했다.
채동영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네트워크 미용의원이 영리성을 극대화하면서 붕괴된 필수의료 의사들의 탈출구가 되고 있다”며 “한국의 기형적 의료 시스템을 바꾸면서 네트워크 의원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도 “필수의료를 제공하는 병원과 그렇지 않은 병원의 의료기관 종별을 구분해 관리하며 지나친 영리화를 방지할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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