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암군은 7일부터 3일동안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다 30년 동안 폐허로 방치됐던 대동공장 양곡창고를 활용한 이색 영화제를 열었다. 제1회 숲숲영화제로 이름 붙여진 이번 행사는 지역 청년기업인 ‘숲숲협동조합’이 기획하고 진행했다.
영암 양곡창고가 돌아가선 시대를 기억하는 주민들은 물론 이곳을 닫힌 철문 건너 폐허로만 알아온 청년들이 모여 과거의 공간이 열린 예술의 장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경험을 공유했다. 인근인 전남 함평 출신 관객은 “주변 공간과 영화가 조화롭고 분위기도 신선해서 좋았다”고 만족해 했다.
영암 토박이인 정서진 대표가 이끄는 조합은 올해 초 대동공장 터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로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청년마을 ‘달빛포레스트’를 출범시켰다. 공장 부지 내 2층 양옥집을 청년마을 본부와 외지 청년들이 머물 공간으로 꾸미고 날 좋은 여름 이곳에서 멋진 영화제를 열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대동공장 터는 정대표의 지인 소유였고, 2층 양옥집은 고모와 고모부가 살던 곳이었다. 어린 시절 이곳에서 뛰어놀았던 정 대표는 대형 스피커로 안내말씀이 전달되고 인부들이 오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기자가 현장을 방문했던 5월 중순 정대표를 비롯한 청년마을 구성원들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영암군은 이미 30여 년이나 비어있던 낡은 양곡창고를 폐산업시설로 지정하고 공간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오래된 구조물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하기엔 안전위험이 우려된다는 판단이 내려진 상태였다. 서 대표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 ‘새실’에 청년마을 거점을 마련하고 환경포럼을 여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영암군이 월출산 국화축제와 맞물려 대동창고의 안전지대 일부분에서 영화제를 기획하면서 서 대표 등이 꿈을 실현할 기회가 왔다. 우선 10월 인근 월출산 도갑사에서 숲숲영화제를 시작했고 7일부터 3일 동안 대동공장 창고안에서 꿈에 그리던 영화제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청년작가 생태환경 특별전시와 대동공장 사진전 등도 시작됐다.
상영된 영화는 모두 폐허로 남은 공간을 주제로 한 것들이다. 방치된 공간이 주민들과 소통하고, 새로운 용도를 찾으며 다시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숲숲협동조합이 지향하는 가치를 다뤘다. 7일 상영된 정재은 감독의 ‘말하는 건축가’는 전북 등지에서 건축을 통한 지역 공간 활용에 힘쓴 건축가 정기용 씨의 일생을 그렸다. 8일에는 김기성 감독의 ‘봉명주공’, 9일에는 정다운 감독의 ‘땅에 쓰는 시’ 등이 상영됐다.
숲숲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청년마을 ‘달빛포레스트’는 “자연을 위한 젊음, 청년(youth for nature)”을 슬로건으로 활동한다. 정 대표는 “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사회적 고민과 성찰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청년 공동체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영암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뜻을 같이 하는 청년들이 월출산을 중심으로 하는 주변 자연환경을 체험하고 지역 사회와 함께 환경을 살려 나가는 공동체를 이뤄나가겠다는 목표다.
서 대표를 비롯해 영암의 환경과 생태를 배경으로 각기 다른 일과 시선, 생각을 가진 다섯 명이 함께 참여해 운영하고 있다. 대를 이은 농업인이면서 새실카페를 운영하는 정 대표와 함께 건설업 전문가인 하준호 부대표, 사회복지사인 문세라 회계책임, 영암곤충박물관 부관장인 김여송 대외협력 담당, 김도성 운영선임 등이 그들이다.
모두 영암에서 나고 자란 토박들. 자신을 낳아준 고향을 살리는 일이라는 점에서 타지 출신들이 운영하는 경우보다 강점이 많다. 일하는 사람도 큰 의미를 가지게 되고 도청과 군청등 지방정부와의 협조도 원활한 편이다. 하준호 부대표는 “태어나 보고 자란 천혜의 환경을 유지하면서 외부 청년들과 공유하고 후대에 전수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10년 전 서울에서 귀향한 문세라 사회복지사는 “고향에 와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면서 조금 외로웠는데, 조합 멤버들을 만나 외로움에서 벗어났다”고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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