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대에서 터진 여대의 남녀 공학 전환 논의가 남녀 간 ‘젠더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공학 전환 논의의 배경은 학령인구 감소, 여학교나 남학교 등 ‘단성(單性) 학교’의 생존 문제 등이 본질이지만 남녀 간 신경전 으로 사안이 흘러가는 모양새다.
13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캠퍼스 건물 곳곳에는 전날 재학생 시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곳곳에 ‘여자가 우습냐’ 등 래커로 칠한 글귀가 보였다. 12일 이 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는 취업박람회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시위로 인해 기업 측 부스가 찢기는 등 엉망이 돼 행사가 파행됐다. 동덕여대는 앞선 이달 5일 학교 발전 계획을 수립하면서 ‘남녀공학 전환’을 논의했다.
동덕여대 총학생회는 전환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재학생들은 남성의 학교 출입에 대한 거부감까지 드러냈다. 한 재학생은 2018년 대학원에서 벌어졌던 20대 남성의 화장실 음란행위 사건을 거론하며 “여대인 지금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공학으로 전환되면 비슷한 사례가 더 자주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12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X(옛 트위터)에 ‘시위에 참여한 동덕여대 학생들을 살해하겠다’는 취지의 글이 올라오자 일부 재학생들은 “신변에 위협을 느꼈다”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해당 게시물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시위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재학생들을 향해 “나중에 아기도 낳고 육아도 하시고 (그럴 텐데 불법 행위는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자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경찰이 여자를 애 낳는 기계로만 보냐”며 비난 글이 들끓었다.
반면 남성 위주 커뮤니티에는 “(여자들이) 여론을 속이려 게시글을 조작했다”며 반발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블라인드 앱 등 직장인 익명 게시판에는 ‘여대 출신은 서류에서 걸러야겠다’, ‘사내에 여대 출신이 있는데 달갑지 않다’ 등 여대 혐오에 가까운 글도 올라왔다.
일각에서는 논란이 장기화 될수록 학내 혼란이 커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동덕여대 음대생들은 이달 29일까지 6차례에 걸쳐 졸업연주회를 할 예정인데 학내 시위 탓에 차질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생 자원이 감소하면서 공학 전환 논의는 불가피했을 것”이라면서도 “학교 역시 공학 전환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 학생과 원활히 소통하는 것이 본분”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문정복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전국 시도교육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9월까지 전국 83개 단성 중학교 및 고등학교가 남녀 공학으로 전환됐다. 내년에는 32곳이 더 전환될 예정이다. 대학의 경우 상명여대가 상명대로, 성심여대가 가톨릭대(통합)로, 부산여대가 신라대로 전환된 사례가 있다.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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