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내달까지 ‘정원처방’ 프로그램
고립 청년-치매 노인-난임 부부 대상
불암산-우장산 등에서 체험 활동 마련
“정원 치유 후 우울 지수 42% 감소”
“으악, 무서워서 못 일어나겠어요.”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노원구 불암산 바위벽 아래로 생애 첫 암벽등반에 나서는 청년 남녀 9명이 모였다. 청년들은 ‘서울형 정원처방’ 프로그램 참가자들로, 이날 전문 강사 지도에 따라 암벽등반에 도전했다. 암벽은 기울기 50∼70도, 길이 30m에 그치는 교육용 코스였지만 ‘생초보 등반가’들에게 아찔함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기자도 이들과 체험을 함께했다. 운동화는 ‘치지직’ 소리를 내며 자꾸만 미끄러졌고 4족 보행 자세를 취하니 서늘한 날씨에도 땀이 삐질 나왔다. 조용하던 참가자들 입에선 하나둘 ‘악’ 소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불암산 경치를 바라볼 땐 ‘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 암벽 오르며 ‘번아웃’ 극복
정원처방 프로그램은 서울시가 시민들의 마음 건강 증진을 위해 정원과 산림 등을 활용한 원예·산림치유 사업이다. 특히 고립·은둔 청년과 치매 어르신, 난임 부부 등을 대상으로 명상과 산책, 물속에서 걷기 같은 다양한 체험활동을 진행했다.
이날 암벽 체험 참가자들도 서울시 고립·은둔 청년 지원기관인 ‘서울청년 기지개 센터’에서 온 이들이었다. 암벽에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대화 없이 쭈뼛쭈뼛하던 청년들은 바위에 오르면서 “파이팅” “할 수 있다”고 외치며 서로를 응원했다. 등반에 성공하고 내려온 참가자들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눈물이 안 나올 정도로 아찔했네요”라며 손뼉을 마주치기도 했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힐링이 필요했던 청년들은 암벽등반 이후에 불암산을 거닐기도 했다. 지난해 ‘번아웃(burnout·극도로 지침)’을 겪어 회사를 그만둔 김모 씨(34·금천구)는 우울감을 이겨내기 위해 이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김 씨는 “다른 사람들과 산에 오르고 야외 운동을 하다 보니 잡생각을 지울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앞서 서울시는 8∼10월 뚝섬한강공원 일대에서 열린 정원산업박람회 행사장 안에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정원처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올해 9월부터 12월까지 정원처방으로 약 350명을 모집해 총 47회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 정원처방으로 시민 건강 잡는다
서울시는 연말에도 예약자를 대상으로 정원처방 시범사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달 도봉구 무수골에선 차를 마시며 명상하고 소리 명상 도구인 ‘싱잉볼’을 연주하고, 물속을 걷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강서구 우장산에선 귀리를 이용한 찜질팩 만들기를 체험한다. 다음 달엔 서울둘레길에서도 프로그램이 열린다.
서울시가 정원처방 확산에 공들이는 이유는 정원이 가진 정서적 치유 효과 때문이다. 산림청이 2022년 치매, 우울증, 발달장애 등을 겪는 국민 321명을 대상으로 정원 치유 프로그램 경험 전후 뇌파, 심박수 등 생체 변화를 비교한 결과 정원 치유가 우울 지수를 42.3%, 스트레스 지수를 21.6% 낮추는 등 정신건강 증진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관계자는 “독일의 ‘치유 도시’로 알려진 바트뵈리스호펜에선 자연처방이 연간 4조 원의 의료비를 절감하는 효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시민들이 정원의 긍정적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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