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끝나도 2025 의대 덜 뽑으라는 의료계…못한다는 이유는

  • 뉴시스(신문)
  • 입력 2024년 11월 20일 07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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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정시 이월 중단 ②예비합격 축소 ③아예 모집중단
모집요강 위반, 수험생 신뢰 훼손…총장에 소송 제기
정부 정한 의료인력 모집 임의 조정, 법령 위반 소지
90년대처럼 정부가 모집정지…법·제도 달라져 “월권”
어떤 방식이든 입시 끝날 때까지 선발규모 몰라 혼란

여야의정 협의체가 출범한 11일 오전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2024.11.11 서울=뉴시스
여야의정 협의체가 출범한 11일 오전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2024.11.11 서울=뉴시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끝났지만 의료계에서 증원된 2025학년도 의과대학 모집인원을 줄이자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수험생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로 이어져 대학은 소송을 당하며 막대한 입시 혼란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교육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여야의정협의체에 참여한 의료계 인사들은 ▲수시 미충원 인원의 정시 이월 중단 ▲예비합격자 축소 ▲수학능력이 낮다고 판단된 학생들에 대한 대학 자율성 보장(미선발 허용) 등을 통해 내년도 의대 증원 조정을 주장했다.

모두 입시 단계에서 의대 증원 규모를 줄이는 방법이다. 적어도 전공의와 의대생들에게 복귀 명분은 줘야 한다는 취지다.

‘정시 이월’은 수시에서 대학이 뽑지 못한 빈 자리를 정시로 넘겨 선발하는 제도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전국 39개 의대 정시 이월 총인원은 2019학년도부터 매년 213명→162명→157명→63명→13명→33명을 보였는데, 이 만큼을 뽑지 말라는 게 의료계 주장이다. 입시 업계는 올해 정시 이월 규모가 100명대까지 늘 것이라 관측한다.

그러나 이는 대학별 입시 모집요강을 어기는 행위로 수험생들이 총장에게 소송을 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예로 서울대 수시 모집요강에는 ‘충원 합격자 발표 이후에도 미충원 인원이 발생하는 경우 정원 내 미충원 인원은 정시모집 일반전형에서 선발함’이라고 적혀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일반적인 판례들은 모집요강에 예고된 대로 학생을 선발해야 된다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이라며 “위반시 소송이 제기될 것이고 대학 총장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예고한 대로 안 하면 다 패소했다”고 말했다.

예비합격자 축소도 거론됐다. 수험생은 수시에서 최대 6차례 지원 기회가 있어 중복 합격이 가능하다. 대학은 합격자가 이탈할 것을 대비해 예비합격자를 발표하고, 이 중에서 중복 합격자가 등록하지 않은 자리를 충원한다. 지방 의대는 합격자가 수도권으로 빠지는 규모가 크기 때문에 증원 규모를 줄일 수 있다.

입시 전문가들은 대학이 임의로 예비합격자 규모를 줄이더라도 수험생들에게 알려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지적한다.

대학들은 통상 수시 최초 합격자를 발표할 때 충원 합격 발표 일정과 횟수도 발표한다. 이를 근거로 충원 규모를 어림짐작하고 예년과 비교해 문제를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당장은 수험생들이 모를 수 있어도 입시 커뮤니티에 합격 점수를 인증하기 때문에 예비합격자 규모가 나오게 된다”며 “수험생은 기회를 상실하는 것이니 소송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수학능력이 낮다고 판단된 학생들을 대학 판단에 맡겨 뽑지 않게 해 달라는 요구도 나왔다. 실제 ‘수학에 지장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단계별 선발인원 및 최종 모집인원을 채우지 않을 수 있다’고 모집요강에 명시한 대학도 있다.

의대 수험생들은 통상 수능이나 내신 점수가 만점에 가깝다. ‘수학능력이 현저히 낮다’는 근거를 상식적으로 적용하면 증원 감축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만일 성적 기준을 임의로 높일 경우 논란도 예상된다.

소송 부담이 고민이라면 정부가 나서 이런 시나리오를 허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볼 수도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정부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월권”이라고 했다. 대학 자율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런 ‘변칙적’ 감축 시도는 현행 법령 위반 소지도 있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28조는 ‘의료인력 양성에 해당하는 모집단위 정원’은 정부 결정을 따라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의료인력 수급 규모는 파급력이 커 정부가 정책적으로 정하고 있다. 대학이 임의로 증감을 할 수 없는 이유다.

교육계에서 더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이상의 어떤 방식을 시도하든 입시에 대한 신뢰가 깨진다는 점이다.

대학이 의대 모집인원을 임의로 조정하면 수험생들은 정시가 끝나는 내년 2월까지 정확한 선발 규모를 알 수 없게 된다. 의대 입시는 다른 대학에도 줄줄이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가 많다. 혼란의 규모는 가늠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교육부 관계자는 “2025학년도 의대 인원을 입시 과정에서 조정할 수 없는 이유는 대입의 안정성과 수험생의 신뢰, 기대 이익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면 공정의 열쇠인 안정성이 흔들린다”고 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 등은 정부가 2025학년도 의대 신입생에 대한 모집정지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대로는 내년에도 의대생 집단 휴학이 뻔한 만큼 의학교육의 파국을 막아야 한다는 요지다.

교육부는 ‘권한 남용’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과거 정부가 대학 정원을 통제할 수 있던 권위주의 시절과 달리, 지금은 정부의 모집정지 권한이 법령으로 제한돼 있다는 것이다. 주로 대학이 법령이나 명령 등을 어겼을 때에 해당한다.

이처럼 의료계와 정부의 간극이 좁혀지기 어려운 상황 속에 여야의정협의체는 이날 비공개 실무 협의를 이어간다.

[세종=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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