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t Plastic Products Now(컷 플라스틱 프로덕츠 나우).” 25일 오전 8시 반경 부산 해운대구 수영만요트경기장 본관 앞. 대형 크레인이 지상 60m 높이까지 끌어올린 가로 30m 세로 24m 크기의 초대형 깃발이 바람에 천천히 나부꼈다. 깃발 아래 20여 명의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활동가들은 한목소리로 이렇게 외쳐댔다. “플라스틱 제품을 없애자”는 뜻이다.
초대형 깃발에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쪽을 응시하는 성인의 오른쪽 눈을 형상화한 그림이 새겨졌다. 전 세계 190여 개국 시민 6472명의 상반신 초상화를 조합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깃발 소재로 친환경 섬유인 재활용 폴리에스터가 쓰였다. 바람이 강하지 않아 완전히 펴진 깃발의 모습을 보기는 어려웠다.
그린피스는 스위스 예술가 단 아허와 협업해 이런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이날부터 다음 달 1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 회의(INC-5)’에 참석하는 각국 협상단에 ‘전 세계 시민이 지켜보고 있다(#We Are Watching)’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배우 윌리엄 샤트너와 제임스 크롬웰과 같은 유명인들도 퍼포먼스 취지에 공감하며 자신의 사진을 제공했다.
깃발 게양을 끝낸 그린피스 활동가들은 “INC-5를 통해 강력한 플라스틱 협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그레이엄 포브스 그린피스 글로벌 플라스틱 캠페인 리더는 “긴급한 조처가 없으면 플라스틱 생산량은 2050년까지 세 배 증가한다. 기후위기와 생태계 오염이 심화하고 인류의 건강은 더욱 위협받을 것”이라며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협약이 이번 회의를 통해 마련돼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나라 그린피스 활동가는 “전 세계 시민이 벡스코에 모인 각국 협상단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 협상단은 플라스틱을 만들어내는 산업계가 아닌 전 세계 시민을 위한 협약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INC-5에서는 175개국 정부를 대표하는 협상단이 모여 플라스틱 오염 종식 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플라스틱 협약은 2015년 ‘파리협정’ 이후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협약 중 가장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파리협정을 통해서는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한 각국의 의무가 제정됐다.
지구의 플라스틱을 감축하기 위한 규칙을 만들자는 논의는 2022년 2월 유엔환경총회에서 처음 시작됐다. 이후 각국 정부 협상단은 2022년 11월 우루과이 푼타델에스테에서 첫 INC 회의를 시작했고, 프랑스 파리와 케냐 나이로비, 캐나다 오타와 등에서 4회에 걸친 회의를 이어왔다. 2022년 유엔환경총회 당시 플라스틱 감축 협약을 올 연말까지 제정하기로 한 만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INC-5가 마지막 회의다.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는 “플라스틱 폐기물의 관리 방안만 담긴 ‘느슨한 협약’이 아니라 생산 자체를 줄이는 ‘강력한 협약’이 이번 협의를 통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3일 국내외 환경단체 16곳으로 구성된 ‘플라스틱 문제를 뿌리 뽑는 연대’ 회원 1000여 명은 회의가 열리는 벡스코 근처의 올림픽공원에서 ‘Stop Plactic(스톱 플라스틱)! 1123 부산플라스틱 행진’을 진행했다. 이들은 손팻말을 들고 회의가 열리는 벡스코 일대를 행진하며 플라스틱 감축을 바라는 전 세계 시민의 열망을 협상단에 전달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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