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째 고통 강화-파주 가보니
주민들 “시각 장애에 환청 들릴 지경
밤마다 무서운 소리, 운동도 못해
대북전단 막고 소음 피해 보상을”
“강화대교만 건너면 환청이 들릴 지경이에요. 이중 창문도 소용없어요.”
19일 오후 만난 인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 주민 안효준 씨(64)의 집은 북한과 직선거리 1.3km 남짓 떨어져 있다. 그는 “대남방송이 심할 땐 집 안에서 TV 소리도 안 들린다”고 하소연했다. 그의 집 앞 비닐하우스에서 기자와 대화하는 도중에도 대남방송이 시끄럽게 들렸다. 가까이 다가가야 상대방의 말이 겨우 들릴 정도였다.
북한의 대남방송이 4개월째 이어지는 가운데 접경지역 주민들은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정부에 호소하고 있다. 취재팀은 강화군과 경기 파주시 등 접경지역 2곳을 찾아가 실제 대남방송이 얼마나 심각한지 살펴봤다.
● 5cm 스티로폼도 뚫는 소음, 시각 장애 유발
이날 당산리에는 ‘윙윙’ 기계 소리, 늑대 울음소리,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명이 번갈아가며 울려 퍼졌다. 대남방송 소리들이었다. 이는 취재팀이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10시 반까지 12시간가량 머무는 내내 계속됐다. 한 번 방송이 시작되면 짧게는 30분, 길게는 2시간씩 온 마을이 소음에 휩싸였다.
주민들은 고통을 호소했다. 안효철 당산리 이장(66)은 지난달 2일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보이는 증상을 겪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뇌에서 눈으로 오는 신경이 스트레스 장애를 일으켰다”고 진단했다. 대남방송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병의 원인이었다. 그의 딸 역시 올해 대남방송이 재개된 뒤 병원에서 처방받은 수면제를 복용해야만 잠자리에 들 수 있을 정도다. 한 60대 주민은 “두께 5cm 스티로폼을 창문에 덧대도 소음이 들린다”며 “새벽까지 잠을 설치다가 3, 4시간 자고 일어난다”고 토로했다. 닭 30여 마리를 키우는 주민 고미경 씨(61)는 “방송 전에는 하루에 최소 20개 알을 낳았는데 방송 이후에는 2, 3개 정도로 줄어들었다. 아무래도 대남방송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13일 취재팀이 찾은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소재 통일촌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주민 강성인 씨(69)는 “(북한) 저 ×××들 때문에 잠을 못 잔다”며 “소음이 크게 들릴 때면 술을 마시고 취해야만 잠들 수 있을 정도라서 이사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 마을 송모 양(14)은 “저녁마다 들려오는 무서운 소리에 다니던 운동도 관뒀다”며 “새벽까지 4∼5시간 동안 이어폰을 낀 채 잠든다”고 했다.
● 주민들 “소음 피해 보상 받을 법 필요”
접경지역 주민들은 정부에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고 소음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납북자가족모임 등 탈북민 단체들은 주기적으로 북한 접경지에서 바람에 날려 보내는 방식으로 대북전단을 살포하고 있다. 통일촌 커뮤니티 센터장인 박경호 씨(53)는 “대북전단 살포에 따른 피해를 왜 접경지역 주민이 봐야 하냐”며 “민관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주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경기도는 지난달 15일 대북전단 살포를 막기 위해 파주시, 연천군, 김포시 등 3개 시군 11개 지역을 위험구역으로 설정했다. 강화군도 이달 1일 자로 군 전 지역을 위험구역으로 설정했다. 이제 이 지역에 들어와 대북전단을 날리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주민들은 피해 보상을 위한 법 제정도 촉구했다. 예를 들어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신설된 서해5도 지원 특별법은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소연평도 주민에게 정주생활지원금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접경지역 주민들에게도 이 같은 지원을 보장하는 내용의 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당산리 주민 김옥순 씨(64)는 “우리는 북한과 불과 1.5∼2km 떨어져 있어 소음 피해가 큰데 보상은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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