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자가 막연하게 살인범의 살인을 예견했다고 해서, 살인범이 예상치 못한 특정인을 살해한 경우 이에 대한 교사자의 고의가 있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26일 동아일보가 확인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김동현)는 이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이 같이 밝혔다. 이 대표가 2018년 12월 22일, 24일 김진성 씨(고 김병량 전 경기 성남시장의 수행비서)와 통화할 당시에 향후 김 씨의 위증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인지하지 못했다면, 위증에 대한 이 대표의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 교사행위 인정·고의성 불인정
재판부는 총 83쪽 분량에 걸친 판결문을 통해 김 씨에 대한 이 대표의 발언이 ‘위증교사’로 볼만한 여지가 있다는 점을 수차례 언급하면서도 이 같은 증거만으로는 고의성 여부를 미루어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위증교사죄는 다의적으로 해석될 여지 없이 교사행위 및 고의성이 입증되어야 하는데, 이 부분이 부족했다는 취지다.
2018년 12월 22일자 통화에서 이 대표가 김 씨에게 변론요지서를 보내겠다고 하자 김 씨가 “제가 거기 맞춰서 뭐 해야죠”라고 말한 부분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김 씨가 변론요청서에 기재된 대로 증언하겠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면서도 “이 대표가 ‘안 본 거 얘기할 필요 없고 시장님(김병량)이 어떤 입장이었는지 상기해달라’고 말하기도 해, 이 사정만으로 이 대표가 위증을 요구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같은 날 통화에서 이 대표가 “어차피 세월도 다 지나버렸고, 저기 뭐 시장님(김병량)은 돌아가셨고”라고 말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재판부는 “김병량이 이미 사망해 이 대표의 주장과 반대되는 증거가 제시되기 어려운 점을 이용해 허위 증언을 요청한 것이라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면서도 “세월이 많이 지났고 정치적 적대관계에 있던 분이 돌아가셨으니 이제는 사실대로 진술해달라는 취지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고 판단했다.
● 항소심 판단 주목
이 대표의 입장에서 김 씨의 증언이 거짓임을 판단하기 어려웠던 사정도 참작됐다. 이 사건에서 문제된 김 씨의 발언은 2019년 2월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고 김 전 시장과 KBS 간에 이 대표를 검사사칭 사건 주범으로 몰기로 하는 협의가 있었다”고 증언한 부분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2002년 검사사칭 사건 당시 이 대표와 고 김 전 시장은 정치적으로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던 점 △김 씨는 고 김 전 시장의 측근으로서 검사사칭 사건에 대해 직접 논의할 위치에 있던 점 △김 씨와 고 김 전 시장 외에는 KBS 측과의 합의에 대한 진위를 확인할 수 없던 점 등을 근거로 이 대표가 김 씨 발언의 거짓 유무를 판별하긴 어려웠을 것으로 봤다.
법조계에서는 항소심 재판부가 고의성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쟁점이 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수도권 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고의와 같은 주관적 의사에 대해서는 그 인정 범위가 재판부마다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 측은 1심 선고 이후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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