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 한국주택금융공사법 시행령 일부 개정
고령의 재개발·재건축 조합원, 주택연금 활용 분담금 납부 가능
고령 자영업자 대출상환 때도 허용… “신규 가입자 증가폭 가팔라질 것”
이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고령의 재개발·재건축 조합원이 주택연금을 활용해 분담금을 낼 수 있게 된다. 또 고령의 자영업자가 폐업하면서 갚아야 할 개인사업자 대출도 주택연금을 이용할 길이 열린다.
이번 조치로 2022년 이후 집값 하락과 가입 조건 완화 등으로 빨라지고 있는 연금 가입자 상승세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위원회는 이런 내용으로 ‘한국주택금융공사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개정안)을 마련해 이달 11일부터 입법예고 중이라고 29일 밝혔다. 이는 올 8월과 10월에 각각 발표된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 공급 확대 방안’과 ‘서민 등 취약계층 맞춤형 금융지원 확대 방안’의 후속 조치이다.
시행령 개정은 국회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즉, 다음 달 23일까지 입법예고 후 규제심사,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심의, 국무회의 심의 등을 거쳐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뒤 공포, 시행된다. 한국주택금융공사 김윤수 주택연금부장은 “늦어도 내년 상반기 중에는 새로운 시행령이 시행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분담금으로 주택연금 대출한도의 70% 허용
주택연금은 55세 이상의 주택 소유자가 집을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담보로 제공하고 매월 일정액을 평생 또는 일정 기간 연금처럼 받는 제도이다. 이번 개정안은 주택연금을 한꺼번에 목돈으로 받는 방식인 ‘개별 인출’에 새로운 조건을 추가하는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주택연금의 개별 인출 목적에 정비 사업 분담금 납부가 신설된다. 또 인출 금액은 대출한도의 최대 50%에서 70%로 확대된다. 이때 정비 사업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약칭 도시정비법)에 따른 재개발·재건축 △주택법에 따른 리모델링 사업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소규모주택정비법)에 따른 소규모주택 정비 사업 등을 의미한다.
금융위는 이와 관련해 입법예고 안내문에서 “고령화율이 높은 1기 신도시 등의 경우 고령층은 분담금 마련이 어려워 재정비 사업 추진에 애로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즉, 주택연금을 활용해 재개발·재건축 등의 분담금을 납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정비 사업의 속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행정안전부 연령별 인구현황 통계에 따르면 올 4월 기준 1기 수도권 신도시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비율은 17%, 60세 이상은 25%를 넘었다. 경기도 다른 신도시와 비교해 5∼10%포인트 높은 수치다. 현금 동원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60세 이상 은퇴자가 많다는 사실은 재건축 사업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주택금융공사가 작성한 분담금 납부용 개별 인출금 규모(종신정액형 기준)를 보면 10억 원짜리 주택을 보유한 70세 가입자라면 3억6820만 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10억 원의 총대출한도(대출한도+초기 보증료)는 집값의 54.1%인 5억4100만 원. 여기에서 주택 가격의 1.5%로 책정되는 1500만 원을 뺀 5억2600만 원이 가입자가 손에 쥘 수 있는 실수령액(대출한도)이다. 이 대출한도의 70%를 적용한 금액(3억6820만 원)이 분담금 납부용 개별 인출금의 최대 한도이다.
● 개인사업자 대출상환, 한도 90%까지
개정안은 또 폐업을 희망하는 자영업자가 기존 개인사업자 대출을 갚으려 할 때도 주택연금 개별 인출을 허용하기로 했다. 고령의 자영업자가 영업 부진 등을 이유로 기존 사업을 정리할 때 빠르게 매듭짓고 재기에 성공하도록 돕자는 취지다.
금융위에 따르면 자영업자(2023년 기준)는 전체 취업자의 23.2%에 달할 정도로 과포화 상태다. 무급가족종사자(89만9000명)를 제외한 협의의 자영업자도 취업자의 20.0%나 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6.9%·2022년)보다 높은 수치이다.
문제는 전체 소득을 5분위로 나눴을 때 가장 낮은 1분위에서 자영업 집중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점. 임금근로자(30.5%)의 2배가 넘는 69.6%에 달한다. 이들 자영업자의 연령별 분포를 보면 50대 이상 장·노년층이 50.4%로,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다. 또 절반 이상이 도소매업이나 숙박·음식업 등 저숙련 업종에 종사했다.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구조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들이 폐업하고 새로운 직업을 갖고자 할 때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55세 이상 유주택 가구의 29%(216만 가구)가 자영업을 하고 있다. 또 자영업자의 59.5%(335만 명)가 사업자 대출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100만 가구 이상이 주택연금 가입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은행이 올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분기(4∼6월) 기준 자영업자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2년 전보다 1500만 원 이상 늘어난 3억4000만 원 수준이었다. 10억 원짜리 주택을 보유한 70세 가입자라면 충분히 상환 가능한 금액이다.
다만 대상자는 주택연금 신청 당시 ‘소상공인기본법’에 따른 소상공인 요건을 충족하고, 6개월 이내에 폐업해야만 한다. 또 신청인 또는 배우자의 사업 용도 대출(담보·신용 무관)을 상환하는 용도로만 가능하다.
개별 인출 한도 금액은 대출 금액의 최대 90%로 재개발·재건축 분담금 납부용보다는 높게 책정됐다. 금리도 0.1%포인트 할인한 우대금리가 적용될 예정이다.
● 주택연금 가입자 크게 늘어날 듯
이번 개정안이 본격 시행된다면 주택연금 가입자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주택연금 도입 첫해인 2007년 가입자는 514명에 불과했다. 이후 가입 조건 등이 완화되면서 매년 가입자(누적 기준)가 늘어나 2018년 1월에 5만 명을 넘어섰고, 2022년 8월 10만 명을 돌파했다. 2년 1개월 뒤인 올해 9월 말 현재 가입자는 30% 이상 증가한 13만2294명이다.
특히 2022년 이후 신규 가입자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2019∼2021년까지만 해도 1만 명 수준에 머물렀지만 2022년에 1만4580명, 2023년에 1만4885명으로 껑충 뛰었다. 올해도 9월까지 1만 명을 이미 넘어섰고, 연말까지는 1만5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김윤수 부장은 “주택연금의 인지도가 높아졌고 가입 연령과 대상 주택의 확대 등과 같은 규제 완화 조치도 영향을 미쳤다”며 “곧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70대로 접어들면 가입자 증가세는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주택연금 평균 가입 연령이 72.2세라는 점을 반영한 추정치다.
주택금융공사 산하 주택금융연구원의 학술지 ‘주택금융연구’에 2020년 게재된 논문, ‘인구구조 변화와 주택가격 전망을 고려한 주택연금의 중장기 수요 추정’에 따르면 신규 가입자는 2030년대 중반 5만 명대까지 치솟은 뒤 2040년대 중반 이후 안정화되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분석됐다.
한편 전체 주택연금 가입자의 주택 유형(누적 기준)을 보면 아파트가 83.7%(11만790건)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어 단독(6.8%·8956건), 다세대(6.3%·8285건), 연립(2.2%·2925건) 순이었다.
또 주택연금을 받는 형태는 가입 이후 일정액을 매월 꾸준하게 받는 정액형이 70.3%를 차지했다. 연금 수령 기간은 종신형(69.8%)이나 종신혼합형(29.1%)과 같이 종신 방식(98.9%)을 대부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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