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제안해 출범한 여야의정 협의체가 출범 20일 만에 가동을 중단했다. 의사단체인 대한의학회와 한국의대·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가 4차 회의 후 “정부와 여당에 사태 해결 의지가 없다”며 불참을 선언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당분간 휴지기를 갖는 것”이라며 재개 가능성을 열어놨지만 의료 공백은 내년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 “정부는 요지부동, 여당은 중재 안 해”
국민의힘 한지아 수석대변인은 1일 협의체 회의 후 “당분간 공식 회의를 중단하고 휴지기를 갖기로 했다”며 “대화가 끝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도 물밑으로 의견을 교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협의체 가동이 중단된 것은 대한의학회와 KAMC가 이날 회의에서 참여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두 의사단체는 그동안 “전공의(인턴, 레지던트)와 의대생 복귀를 위해 내년도 증원 규모를 조정해야 한다”며 △수시모집 미충원 인원 정시 이월 중단 △정시 예비 합격자 인원 축소 △모집요강 내 선발 인원 관련 학교 자율성 보장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2025학년도 의대 모집 인원은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모집 요강대로 입시가 진행 중인데 수험생에게 혼란을 줄 수 없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이는 타협이 불가능하고 협의체가 파행되더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의사단체는 이날 “해결 의지를 조금이라도 보여 달라고 간절히 요청했으나 정부는 어떤 유연성도 보이지 않아 절망했다. 여당은 정부를 압박하거나 중재에 나서지 않아 진정성을 의심케 했고, 야당 역시 협의체에 참여하지 않고 수수방관했다”며 여야정을 싸잡아 비판했다. 다만 “정부 여당이 확실한 정책 변화를 보여준다면 다시 판단하고 논의할 순 있다”며 재가동 가능성의 여지는 남겼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협의체 파행의 책임은 전적으로 아무런 근거 없이 과한 증원을 주장한 윤석열 대통령 개인에게 있다”며 책임을 떠넘겼다.
● 내년 의료 공백 지속 전망
그나마 대화 의지를 보였던 두 의사단체가 협의체 불참을 선언하면서 당분간 의정 간 대화는 멈추게 됐다. 법정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내년도 모집 중단’을 요구하며 더 강경한 태도를 고수 중이다.
또 협의체 출범 시 “국민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겨 드리겠다”고 했던 여당의 공언이 무색하게 의료 공백은 연말을 넘어 내년에도 이어지게 됐다. 서울의 한 의대 교수는 “의협의 새 지도부가 내년 1월 출범한다”며 “2025학년도 입시가 마무리되는 내년 2월 이후 2026학년도 의대 증원을 두고 정부와 의협 새 지도부 간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 그나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의료 공백 장기화로 환자와 국민의 피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달 5일부터 내년도 상반기 전공의 모집이 시작되지만 지원자는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7, 8월 진행했던 하반기 전공의 모집 때 모집정원 대비 지원율은 1.6%에 불과했다.
병원을 지키던 전임의(펠로)와 교수들의 대학병원 이탈도 시간이 갈수록 가속화되고 있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당직 부담이 장기화되면서 체력적으로 힘들어 사직하거나 휴직하는 교수가 늘고 있다”며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며 신규 전문의 배출이 중단됐고, 이에 따라 전임의 충원도 연쇄적으로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관계자는 “의정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곳곳에서 환자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데 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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