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면 돼요. 이젠 제가 형제 덕분에 웃고 두 사람에게 의지하면서 살고 있죠.”
1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재가복지센터에서 만난 사회복지사 김재영 목사(55)는 6년째 상도동 반지하에서 발달장애 형제 김유기 씨(54), 김락기 씨(50)와 함께 살고 있다. 김 목사와 두 형제는 피로 이어진 사이는 아니지만 형제가 노모를 여윈 후 세 사람은 ‘한 지붕 가족’이 됐다.
3일 ‘세계 장애인의 날’을 앞둔 가운데 김 목사와 두 형제의 사연이 주목을 받고 있다.
세 사람의 인연은 2018년 6월에 시작됐다. 김 목사는 고독사한 무연고자나 사망한 노인들의 장례를 대가 없이 치러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김 목사가 돌보던 노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를 돕고자 방문한 한 임대아파트에서 김 씨 형제를 만났다.
김 목사의 도움으로 형제들은 경기 화성시의 한 납골당에 노모를 모셨다. 집을 나서려던 김 목사의 발길을 붙잡은 건 형제들의 눈물이었다. 김 씨 형제는 벽을 본 채 우두커니 서서 울고 있었다.
당시 김 목사는 이제 친지도 없는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됐다고 한다. 그는 형제에게 “무섭냐. 형이랑 같이 살래?”라며 동거를 제안했고 형제들은 “응, 같이 갈래”라고 답했다. 형제의 지능은 약 9세 어린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초반 3년은 다툼도 잦았다. 형제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저장해두는 ‘저장강박증’이 있다. 다 쓴 휴지를 동그랗게 모아서 쌓아두거나 빈 라면 봉지를 3년 치 모으기도 했다. 형제가 모아둔 물건들을 버렸다가 싸우기도 여러 번. 김 목사는 “‘안 돼’라고 다그치기보단 옆에서 지켜보며 다독이는 게 그들을 진정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6년이 지난 지금, 세 사람은 진짜 형제와 다름없었다. 이날 만난 이들은 서로 “밥은 먹었냐”, “반찬은 남았냐”, “추우니 이불이라도 깔아라”는 등 소소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들은 지켜본 이웃들은 “가족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인근의 한 주민은 “(김 목사가 형제들을) 매번 차에 태워서 데리고 다니니까 친정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줄 알았다”며 “항상 밝게 다니더라”고 했다.
김 목사는 형제를 반지하에 데리고 살아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이들이 사는 반지하는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이다. 12평 남짓한 크기다.
김 목사는 “반지하는 냄새도 나고 곰팡이도 펴 위생상 좋지는 않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다”며 “웬만한 곳은 월세가 70만~80만 원이라 이사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했다. 김 목사는 월 300만 원가량의 사회복지사 월급을 받고 있는데, 이 돈으로 이사는 턱없이 모자라다는 것.
현재 35만 원인 월세를 포함해 한 달에 세 사람이 쓰는 생활비는 70만~80만 원이다. 추운 겨울에는 난방비로 월 10여만 원이 더 들어간다. 교회를 운영하는 김 목사는 “아는 분들이 간간이 2만 원, 20만 원씩 등 돈을 보태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에게는 장성한 두 아들이 있다. 그는 “(자녀들이) 나를 항상 이해하고 지지해 준다”며 “사랑은 책임을 지는 것다. (나와 함께 살기를 선택한) 형제와 평생 같이 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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