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발달장애 형제’ 6년째 품고 사는 목사 “진짜 삼형제 됐죠”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3일 03시 00분


오늘 세계 장애인의 날
‘고독사 노인’ 장례 돕는 김재영 목사
부모 잃고 눈물 ‘지능 9세’ 형제 만나… “형이랑 같이 살자” 반지하 동고동락
장애인 80%가 50대 이상 고령자… “홀로 남는 장애인 통합지원 절실”

김재영 목사(오른쪽)가 2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자택에서 김유기, 김락기 형제와 함께 교회 후원으로 들어온 빵을 나눠 먹고 있다. 김 목사는 발달장애가 있는 이들 형제와 6년째 함께 지내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일 오후 4시 서울 동작구의 한 다세대주택 앞. 하늘색 경차에서 김재영 목사(55)와 김유기 씨(54)가 내렸다. 김 목사가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는 대방재가복지센터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김 목사가 “유기야, 목에 걸고 다니던 포켓몬 카드 어디 있어?”라고 묻자 그는 부끄럽다는 듯 “아이, 몰라” 하면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약 39㎡(약 12평) 면적의 방 2개짜리 반지하. 큰 방에서 자고 있던 김락기 씨(50)가 인기척을 느끼고 나와 “안녕하세요” 인사했다. 락기 씨는 김 목사를 보더니 “돼지형(김 목사의 애칭), 일 끝났어?” 물었다.

유기 락기 씨 형제는 발달장애를 갖고 있다. 지적 수준이 아홉 살 어린이 정도다. 김 목사는 형제가 6년 전 어머니를 여읜 뒤 자청해서 동거를 시작했다. 세계 장애인의 날(3일)을 앞두고 취재팀이 만난 이들 세 사람은 피로 이어진 가족보다 끈끈해 보였다.

● 어머니 잃은 형제… 김 목사 “같이 살자”

2018년 6월 김 목사는 가족도 친척도 없는 노인들을 돌보다가 그들이 세상을 뜨면 장례를 치러주곤 했다. 그달 한 할머니가 또 세상을 떠났는데, 유기 락기 씨 형제가 바로 그 할머니의 자식들이었다. 김 목사가 장례를 치른 뒤 형제는 방 안에서 울고 있었다.

김 목사는 “친척도 없었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도저히 가늠이 안 됐죠”라고 회상했다. 김 목사는 고민 끝에 “무섭냐. 형이랑 같이 살래?”라고 물었다. 종종 어머니를 돌봐주러 온 김 목사가 익숙했던 형제는 “같이 갈래”라고 답했다.

동거 초반 3년은 다툼도 잦았다. 형제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저장강박증이 있었다. 다 쓴 휴지나 라면 봉지를 모아두는 식이다. 김 목사는 “처음에는 서로를 잘 몰라 다그칠 때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독이는 게 진정 형제를 위한 것이란 걸 알았다”고 말했다.

● ‘반지하’ 빠듯하지만 “평생 같이 살 것”

김 목사와 형제가 사는 반지하 집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5만 원이다. 김 목사는 “냄새도 나고 곰팡이도 펴 위생상 좋지는 않지만 웬만한 곳은 월세가 70만∼80만 원이라 이사가 쉽지 않다”고 했다. 김 목사의 수입은 월 300만 원가량의 사회복지사 월급이 전부다. 복지센터가 있는 빌라 건물 지하에 그의 ‘겨자씨 교회’가 있지만 수입은 거의 없다.

세 사람이 매달 쓰는 생활비는 70만∼80만 원. 겨울에는 난방비로 월 10여만 원이 더 든다. 주변 지인들이 간간이 2만 원, 20만 원씩 보태 줄 때도 있다. 김 목사는 “사랑은 책임을 지는 것이다. 형제와 평생 같이 살 것”이라며 “이미 독립한 두 아들도 나를 지지해 준다”고 말했다.이들을 본 한 이웃 주민은 “김 목사가 매번 머리가 하얗게 센 어른들을 차에 태워서 다니길래 처음에는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줄 알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 장애인 80%가 50대 이상… “지원책 필요”

보통 발달장애라고 하면 어린이, 청소년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유기 락기 씨 같은 50대 이상 고령 장애인도 많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등록 장애인 264만1896명 중 80%(212만9304명)가 50대 이상이었다. 그중 발달장애인은 5만6240명에 달했다. 고령 장애인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오늘날 ‘노인 복지 서비스’와 ‘장애인 복지 서비스’가 분절돼 노인이 되면 각종 지원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고령 장애인에게 맞춤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는 통합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계 등에서는 발달장애인의 경우 만 40세가 넘어갈 때 노인과 유사한 신체기능 저하를 겪는다고 보고 있다. 이동석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40대 발달장애인은 60, 70대 비장애인에 준하는 신체 기능을 갖게 되고 기대 수명도 짧다”며 “특히 노령의 부모들이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겨질 고령 발달장애인에 대한 금전적 지원 외에도 거주 지원 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50대#발달장애#목사#세계 장애인의 날#고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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