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 플라스틱 감축… 원료 만드는 산유국 반대에 협약 ‘빈손’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3일 03시 00분


‘국제 플라스틱 협약’ 타결 무산
세계 180개국 대표단 2년간 회의… 100개국 이상이 감축 지지했지만
‘만장일치’ 못 이뤄 최종 합의 불발, 내년 추가 협상… 타결 가능성 낮아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위한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 회의가 2일 빈손으로 끝났다. 2022년 유엔환경총회에서 올해 말까지 플라스틱 오염을 줄이는 협약을 만들기로 했지만 결국 기한을 못 지킨 것이다. 2년여 동안 세계 약 180개국 대표단이 모여 5차례 회의를 거듭했는데도 결론을 못 내린 걸 두고 “플라스틱과의 작별이 얼마나 어려운지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 산유국, 생산 규제 반대로 결론 못 내

환경부는 2일 새벽 “지난달 25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협상이 종료일(1일)을 지나 2일 오전 3시까지 치열하게 진행됐지만 협약 성안에 이르지 못했다”며 “2025년 추가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세계 178개국 대표단 등 3000여 명이 참석한 회의에서 가장 쟁점이 됐던 것은 플라스틱 원료인 폴리머 생산 규제 여부였다. 협약은 크게 플라스틱 생산 감축, 소비 감축, 재활용 확대로 구성되는데 석유에서 만들어지는 폴리머를 규제하려 하자 산유국들이 강하게 반대한 것이다. 특히 폴리머 5대 생산국 중 하나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생산 규제 내용을 협약에 포함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러시아도 “모든 국가가 수용할 수 있는 조항에 집중하자”는 논리로 생산 규제에 반대했다.

루이스 바야스 발디비에소 의장은 이번이 ‘마지막 협상’인 만큼 성과를 내야 한다며 5차례 중재안을 제시하는 등 막판까지 노력했다. 또 유럽연합(EU)을 포함한 100개국 이상이 플라스틱 생산 감축 제안을 지지했지만 그동안 국제 환경협약이 ‘만장일치’로 이뤄졌다는 점 때문에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생산 규제 외에 재원 마련 방식 등에서도 국가 간 입장이 대립했다”고 전했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산유국 입장에선 기후위기로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자는 협약이 만들어진 상황에서 플라스틱 생산 규제까지 생기면 치명적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제사회가 규제 마련에 실패하면서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됐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포천비즈니스인사이트(FBI)에 따르면 2023년 세계 플라스틱 시장 규모는 약 710조 원에 달하는데 2032년에는 약 1090조 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또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2060년에는 2019년 대비 플라스틱 생산량과 소비량이 3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 “큰 틀 합의라도” 호소도 무위로

환경부에 따르면 플라스틱 일회용기가 썩는 데 걸리는 기간은 500년 이상으로 다른 일회용품인 종이(2∼5년), 나무젓가락(20년)보다 훨씬 길다. 1950년대부터 생산된 플라스틱을 모두 합치면 90억 t에 달한다. 전 세계가 버리는 4년 치 폐기물에 해당하는데 소각되는 양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썩지 않은 상태로 어딘가에 묻혀 있거나 바다를 떠다니고 있는 것이다. 태평양에만 한국 면적 15배의 ‘쓰레기 섬’이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재활용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현재 전 세계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9%에 불과하다.

더구나 이번 협상위에서 결론을 냈더라도 실제로 이행되는 건 한참 후가 된다. 온실가스 감축의 경우 1992년 유엔기후협약이 체결됐지만 교토의정서(1997년), 파리협약(2018년) 등으로 실효성을 갖추기까지 길게는 수십 년이 걸렸다. 발디비에소 의장이 “큰 틀의 합의라도 이루자”고 호소하고 개최국인 한국 정부도 이에 동의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다만 한국 정부를 두고선 플라스틱 생산량 세계 4위, 1인당 소비량 1위국인 만큼 산업적 타격을 우려해 협상에 임하는 태도가 소극적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추가 협상은 내년부터 이뤄질 예정인데 현재처럼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상황에선 생산, 소비, 재활용을 아우르는 내용으로 타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협상위 관계자는 “생산 감축 문구를 협약문에 넣는다면 산유국들의 피해를 보전해 주는 방안 등을 고려해야 돌파구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을 찾았던 환경단체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에이리크 린데비에르그 WWF 글로벌 플라스틱 정책 책임자는 “국제사회가 플라스틱 제품 및 화학물질 금지에 합의하지 못하면서 안전하고 살기 좋은 지구를 유지할 가능성은 더 멀어졌다”며 유감을 표했다.

#플라스틱 감축#산유국 반대#협약#빈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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