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협조를 요청해 업체들이 많게는 비용 수백 억 원, 인력 수백 명을 투입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 이후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놓고 관련 업체들 중심으로 ‘추진 동력을 잃은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10일부터 12일까지 동아일보가 접촉한 AI 디지털 교과서 개발 업체 관계자들은 “지금도 개발비 등의 돈을 계속 투입하고 있는데 이번 사태로 인해 사업이 폐기될까봐 두렵다”고 입을 모았다. 한 업체 관계자는 “뽑아둔 인력도 많고 현재도 지역 박람회 등에 인력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는데 사업이 엎어지면 어떡할지 멘붕(멘탈붕괴) 상태”라며 “공교육에 적합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도입 중단시 폐기되면 다른데 쓸 곳도 없다”고 토로했다.
벌써부터 관련 업체들 사이에선 2026년 이후 도입될 과목의 AI 디지털교과서를 놓고 더딘 개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교육부는 이미 계엄 사태 이전 현장 반발을 고려해 국어와 기술·가정 등 일부 과목 도입을 취소하는 등 2026학년도부터 도입 계획을 축소 또는 연기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2026학년도 교과서는 이미 개발이 진행 중이라 취소되면 매우 곤란하다”면서도 “2027학년도부터 도입되는 과목의 경우 내년 1월부터 개발에 착수해야 하는데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좀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AI 디지털 교과서 업체 대표는 계엄 사태 이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내년에는 초중고교 중 일부 학년의 AI 디지털 교과서 사업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글을 올렸다가 지우기도 했다. 그는 “정책적으로 확정된 게 없는데 AI 디지털 교과서에 한정된 회사 자원을 계속 투입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근 전국교사노동조합(전교조)와 서울교사노조 등에서는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대통령의 교육정책을 거부한다”며 내년 AI 교과서 도입을 철회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야당은 AI 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교과서로서의 지위를 박탈하려고 하는 상황이다. 이 경우 각 학교의 장은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AI 디지털 교과서 채택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학교 예산에 따라 사용 여부가 달라져 AI 디지털 교과서로서의 의미가 퇴색된다.
교육부는 AI 디지털 교과서를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야당에서 추진하는 법안은 ‘소급 입법’의 문제가 있다. 교과서 지위가 박탈되면 각 학교가 무료로 사용할 수 없다”며 “법사위에 AI 디지털 교과서가 ‘교과서’로서의 필요성을 설득하면 정부 의견을 동의해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12일 오후 2시 세종 정부세종청사에서 AI 디지털 교과서를 활용한 학생 맞춤 교육에 대해 학부모들과 차담회를 개최했다. 이 부총리는 이날 차담회에서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따라 학생 한 명 한 명의 성장을 지원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라며 “AI 디지털 교과서를 활용하여 학생 맞춤 교육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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