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뇌도 몸도 자꾸 사용해야
70대, 노화와 싸우는 마지막 시기
80대는 노화 받아들이는 시기
노년에는 통통한 쪽이 건강 장수
혈당 혈압 조금 높아야 머리 맑아
인생 ‘100세 시대’라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조금 우울해진다. 통계청 생명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23년 출생아 기준 83.5세(남성 80.6세, 여성 86.4세). 하지만 건강수명은 이를 따라잡지 못했다.
건강수명 조사가 이뤄진 2022년 생명표 기준으로 보면 기대수명 82.7세 중 유병 기간을 제외한 기간은 65.8년에 불과하다. 질병이 있더라도 주관적으로 본인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기간은 72.2년이었다.
통계상 노인들은 마지막 16.9년간 골골거리며 병원을 들락거리는 신세가 된다는 뜻이다.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비법은 없을까.
일본의 정신과 의사 와다 히데키(和田秀樹·64)는 고령자 전문 정신과 의사로서 35년 간 6000여 명의 고령 환자를 접하며 깨달은 점을 저서로 내놓았다. 사실 그는 저서가 50권이 넘는 다작작가에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이중 ‘70세는 노화의 갈림길(2021)’ ‘80세의 벽(2022)’ ‘70세의 정답(2022)’ ‘60세부터는 멋대로 살아라(2022)’ 등 2020년대 이후 쏟아낸 연령을 주제로 한 저서들은 일본에서 수십 만 부씩 팔리며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일부는 한국에서도 번역출간됐다. 이 책들에서 참고가 될 만한 대목을 소개해본다.
‘버럭’ 60대, ‘감정 제어’에 유의해야
60대는 신체적으로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뇌는 다르다. 50, 60대 무렵부터 ‘버럭’ 화를 내는 사람이 늘어난다. ‘부모님이 나이 들수록 화를 잘 내신다’거나 ‘나이 들면서 성격이 거칠게 변하셨다’고 하는 얘기를 적잖게 들을 수 있다. 일본에서는 ‘폭주(暴走)노인’ ‘노인성 분노조절장애’가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고령자에게서 흔한 분노조절 장애의 배경에는 뇌 전두엽 변화가 있다. 뇌 앞부분에 있는 전두엽은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기관으로 논리적 사고, 언어 기능도 담당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기관인 셈.
문제는 이 전두엽이 뇌에서 가장 빨리 노화가 시작된다는 점. 빠르면 40대부터 위축이 시작된다. 알코올이나 고탄수화물증, 스트레스에 의해 손상이 가속된다. 전두엽이 위축되면 감정 콘트롤 능력이나 의욕, 창조성이 확 줄어든다.
충동제어 기능 전두엽, 뇌에서 가장 빨리 노화
50, 60대가 되면 전두엽 기능은 본격적으로 떨어진다. 이 시기에는 ‘성격의 첨예화’ 현상도 일어난다. 평소 화를 잘 내던 사람은 더욱 화를 내게 되고, 의심많은 사람은 더 의심이 깊어진다. 완고했던 사람은 더 옹고집이 된다. 온화했던 사람은 더 부드러워진다.
적응력도 떨어져 새로운 정보나 사고방식에 대해 유연성이 사라지고 보수적인 행동을 취하게 된다. 젊은 직원이 낸 아이디어에 대해 “그런 식으로 해서 일이 되느냐. 철없는 소리” 식의 반응을 보이는 ‘꼰대’가 이래서 생겨난다.
와다 박사는 60대가 신체와 뇌의 기능을 유지하려면 계속 부지런히 사용해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가장 권장하는 것은 적어도 70대까지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70세는 노화의 갈림길
70대 초반까지는 인지장애(치매)가 되거나 환자가 된 사람은 10%도 채 안 된다. 이 시기를 의도적으로 노력하며 보낸다면, 신체도 뇌도 젊음을 유지할 수 있고 남의 간병을 받는 환자가 되는 시기를 늦출 수 있다.
와다 박사는 “70세부터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몸과 마음의 건강이 언제까지 유지되느냐가 결정된다”고 지적한다.
70대에도 신체적 기능은 비교적 건강하지만, 전두엽 노화로 의욕이 저하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70대는 집에 틀어박혀 활발하지 않은 생활에 젖어 들기 쉬운 연령대다. 그러므로 노화를 늦춘다는 측면에서도 여전히 사회활동을 하는 게 좋다.
나이가 들면 은둔 생활을 하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70세 넘어 그런 생활을 하게 되면 단숨에 뇌 기능, 운동 기능을 노화시켜 버릴 위험이 있다. ‘은퇴하면 팍 늙는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언제까지나 현역으로 생활한다는 자세가 노화를 늦추고 만년을 건강하게 보내는 비결이다.”
다만 노년의 일하는 방식은 젊을 때와는 달라야 한다. 돈이나 효율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을 살려 누군가를 돕고 사회에 도움을 주는 데 가치를 두는 게 바람직하다.
80세 이후 행복의 비결
80대쯤 되면 신체 능력과 뇌 기능에서 개인차가 커진다. 치매가 진행돼 대화가 잘 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라톤을 완주하거나 현역으로 경영을 하거나 학자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다.
“70대 무렵까지는 현역 때와 그다지 변화 없는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80대를 넘기면 대부분 늙어간다. 늙음을 멈출 수는 없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늙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가 80대 이후 반드시 찾아온다.”
‘80세의 벽’에서 와다 박사는 “70대가 늙음과 싸우는 시기라면 80대는 늙음을 받아들이는 시기”라고 말한다. 80세 이후 행복의 비결은 건강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늙음을 받아들이는데 있다는 것.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소중히 여기면 삶을 긍정에너지로 채울 수 있다.
와다 박사는 또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한다’는 과도한 강박과 욕심은 스스로를 압박하고 무리한 절제로 이끌어 결과적으로 행복하지도, 건강하지도 못한 삶을 만든다고 경계했다. 당장 내일 생이 마감돼도 후회되지 않도록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이다.
<80대가 유념할 것>
⦁걸어라. 걷지 않으면 못 걷게 된다. ⦁씹으면 씹을수록 몸과 뇌는 깨어난다. ⦁혈당 혈압치는 낮추지 않아도 된다. ⦁고독, 홀가분한 시간을 누리자, ⦁좋아하는 일을 한다.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자. 틀어박히면 뇌가 우울해진다. ⦁싫은 사람과는 어울리지 말라. ⦁잠이 오지 않으면 자지 않아도 된다. ⦁하고싶은 말은 해버려야 마음이 가볍다. ⦁노인의 변신은 무죄…변절을 두려워말라. ⦁천진난만은 늙음의 특권이다. ⦁배우기를 멈추면 늙는다. ⦁‘렛 잇 비’로 산다. ⦁80세가 넘으면 건강검진은 하지 않아도 된다. ⦁병과 싸우지 말고 병과 함께 살아간다. ⦁80세 이후는 대형병원 전문의보다 동네의사와 상의한다. ⦁장기별 진료보다 통합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약은 몸이 좋지 않을 때만, 필요한 만큼만 먹는다.⦁암은 절제하지 않는다. ⦁혈압은 80대 이후에는 높아도 된다. ⦁먹고 싶은 음식은 참지 않고 먹는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뇌 전두엽이 자극돼 뇌가 젊어진다. ⦁술은 마셔도 되지만 정도껏. ⦁담배도 피워도 된다. ⦁운동은 적당히, 산책이 제일이다. ⦁우울증은 몸과 마음을 움직여 예방한다. ⦁삶의 보람을 찾지 않는다. 즐기다 보면 보이니까. ⦁치매를 늦추려면 약보다 머리를 써야 한다 ⦁전두엽 위축으로 의욕이 사라진다면 뇌를 써서 자극해준다. ⦁오래 살기가 중요할까, 남은 인생이 중요할까. -‘80세의 벽’에서
“젊게 오래 살고 싶으면 노년 다이어트는 금물”
와다 박사는 “오랜 세월 많은 고령자를 진찰했는데 고령에도 건강한 사람은 통통한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실제 나이보다 10~20년 젊어 보이는 사람은 대부분 통통한 체형이다. 반대로 실제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사람은 마른 체형인데, 식사에서 단백질이 부족한 경향이 있다. 고령자의 단백질 부족은 노화를 앞당기고 면역력 저하도 초래한다. 때문에 암을 비롯한 다양한 질병 위험이 높아진다.”
그는 사람을 오래 살게 해주는 의료 기술과 건강을 유지해주는 의료 기술은 다르다고 한다.
예컨대 콜레스테롤은 ‘장수의 적’이라 불리지만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사람일수록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다. 콜레스테롤은 남성호르몬 재료이기도 한데, 고령남성은 이 수치가 높을수록 몸과 머리가 건강하다.
고령자의 경우 혈압이나 혈당치가 비교적 높을수록 머리가 맑다. 반대로 혈압약이나 혈당약을 복용해 수치를 인위적으로 낮추면 머리가 멍해진다. 고혈압이나 고혈당이면 염분과 식단을 제한하게 되는데 삶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기운없는 노인이 되기 십상.
오래 살기가 중요할까, 남은 인생이 중요할까
약을 먹더라도 의사가 권장하는 수치가 아니라 일상적인 활동량을 떨어뜨리지 않는 정도로 조절하는 게 낫다. 흐릿한 정신으로라도 오래만 살지, 맑은 정신으로 남은 인생의 질을 확보할지 생각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아울러 와다 박사는 “70대부터는 영양 부족에 주의하는 게 우선”이라며 “체중 조절을 한다면 의학적 기준 체중보다 약간 통통한 쪽에 목표를 맞추라”고 권한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뚱뚱한 사람이 사망률이 낮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나왔다. 지난달 11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은 20여 년 전 건강검진을 받은 성인 847만 명을 추적 관찰한 결과, 한국인 비만 진단 기준인 ‘체질량지수(BMI) 25 부근에서 사망 위험이 가장 낮더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몸무게(㎏)를 신장의 제곱(㎡)으로 나눈 값인 BMI는 비만 판정의 기준. 한국은 BMI 18.5~22.9를 ‘정상’, 23~24.9를 ‘비만 전단계’(위험체중·과체중), 25 이상을 ‘비만’으로 분류하고 있다. 예컨대 신장 170cm인 사람의 BMI지수를 예로 들면 체중 60kg이면 20.7, 70kg이라면 24.2, 80kg 이라면 27이 된다. 이 조사에서는 BMI 18.5 미만과 35 이상에서 사망 위험이 가장 높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