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에 아버지와 생이별한 딸이 아흔을 넘겨서야 부친의 유해와 마주했다. 광복 이후 이념 대립 등으로 민간인이 대거 희생된 제주 4·3 사건 당시 군경에 끌려간 아버지를 75년 동안 기다린 양두영 할머니(94) 이야기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17일 제주4·3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에서 ‘행방불명 4·3희생자 봉환식 및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를 개최했다.
이번에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고 양천종 씨(1898년생)다. 제주시 연동리 출신인 양 씨는 4·3사건이 한창이던 1949년 7월 농사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군경에 영문도 모른 채 체포돼 광주형무소에 수감됐다. 당시 함께 체포된 양 씨의 아들 두량 씨(1924년생)는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
체포 넉 달 뒤 양 씨는 가족들에게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편지를 보낸 뒤 소식이 끊겼다. 가족들은 같은 해 12월 24일 광주형무소로부터 고인의 사망 통지서를 받았지만, 시신은 수습하지 못했다. 수많은 유골이 뒤엉켜 묻힌 광주형무소 공동묘지에서 고인을 찾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75년간 잠들어있던 양 씨는 광주형무소 옛터 발굴 과정에서 발견됐다. 2019년 12월 옛 광주교도소 부지 정비 과정에서 261구의 무연고 유골이 발견된 것이다. 발굴터는 1980년 5·18 당시 계엄군이 주둔했기 때문에 5·18 희생자의 암매장지로 추정됐다. 하지만 5·18 행불인 유족을 대상으로 유전자 대조 작업을 벌인 결과 일치된 DNA가 없었다.
제주도는 해당 유해가 4·3 당시 광주형무소에 수감된 제주도민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유해를 4·3 희생자 유족의 유전자 정보와 대조했고, 261구 중 1구가 양 씨임을 밝혀냈다.
이날 제주공항에 도착한 부친의 유해를 맞이한 양 할머니는 “함께 끌려간 오빠도 데려오지 왜 혼자 왔느냐”고 흐느꼈다. 그러면서도 “75년 만에 아버지를 만나니 좋수다(좋습니다)”고 말했다.
양 씨의 손자이자 두량 씨의 아들인 성홍 씨(78)는 “할아버지 유해를 수습할 수 있어 기쁘다”며 “4·3으로 희생된 모든 행불 희생자들이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 품에 안기길 바란다”며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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