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 국가 등이 사이버 보안 관련 규제 강화 방침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 입장에서 ‘수출 장벽’이 추가되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국내에 관련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이희조 고려대 융합보안대학원 책임교수는 12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가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장기적인 융합보안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려대 융합보안대학원은 2019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국내 최초 및 최대 ‘융합보안 인재’ 양성 기관이다. 고려대에선 매년 50명 이상의 석박사급 인재들이 융합보안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
―‘융합보안 인재’를 알기 쉽게 설명해 달라.
“첫째, 융합이란 두 개 이상의 기술이 합쳐지며 시너지를 내는 것이다. 정보기술(IT)과 운영기술(OT)이 대표적이다. IT는 인터넷 네트워크 등 컴퓨터 중심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말하며 OT는 공장 생산이나 자동차, 의료기기, 에너지 관리 시스템 등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명령을 내리는 산업용 제어 시스템이다. 산업이 고도화되며 전통 제조 산업현장의 운영에 IT가 연동되고 있는데 이렇게 결합된 다분야를 이해하는 인재가 ‘융합 인재’다. 둘째, 융합 분야에 보안 위협이 높아졌다. 해킹을 당해 공장 생산이 멈추거나 자동차 사고가 발생하고, 환자 생명이 위태로워지기도 한다. 이를 막으려면 공장 제어 시스템에 대한 보안이 필요한데 IT만 이해하고, OT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반쪽짜리 보안 인재가 된다. 결국 IT와 OT를 모두 이해하고 통합 보안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인재가 ‘융합보안 인재’다.”
―국내 융합보안 인재 양성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최근 세계적으로 기업들이 랜섬웨어 공격을 당해 공장 가동을 멈추거나, 해커에게 돈을 요구받는 일이 늘었다. 3년 전 미국 최대 송유관 운영사가 해킹을 당해 미 동부 지역에 연료 공급이 중단된 적도 있다. 이 때문에 해외 기업 및 국가들은 해킹 등 불법 행위에 강경하게 대응 중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에선 법령을 강화해 사이버보안 관련 요건을 충족해야 정부에 납품하거나 유통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이미지 타격을 염려해 법적 대응이나 보안 시스템 강화를 택하는 대신 해커들에게 수억 원씩 주고 무마하는 경우가 많은데 계속 이렇게 대응할 순 없다. 글로벌 보안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국제 표준과 보안 인증 요건을 이해하는 융합보안 인재 육성이 절실하다.”
―경쟁력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노하우를 설명해 달라.
“융합보안 인재 육성을 위해선 협업이 필수적이다. 고려대의 경우 현재 12개 연구실이 참여해 18개 특화 수업 커리큘럼을 운영중이다. 보통 대학원은 본인 연구실에서만 공부하는데 다른 연구실과 공동으로 일하며 협업 능력을 키우고 있다. 또 2년 석사 과정의 경우 인턴십이 필수다. 방학 때 KT, SK텔레콤, LS일렉트릭 등과 협력해 프로젝트식 인턴십을 진행한다. 제품 출시 전 취약점을 찾는 버그 테스트를 하는 식이다. 학생들은 기업 프로세스를 경험하며 졸업 후 어떤 진로를 선택할지 정할 수 있다. 기업들 역시 자체 보안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라며 반응이 좋다.”
―해외기관이나 기업과도 협업을 하나.
“현재 독일, 스위스, 미국 연구기관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정보통신 강국인 한국의 기술을 자국 사업에 접목시키고 싶어 한다. 특히 제조업 강국인 독일은 공장 운영시스템 보안에 관심이 많아 가장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올해와 지난해는 학생들이 독일 단기연수에서 다름슈타트 공대의 PTW 제조생산연구소와 제조기업 현장을 방문했다. 기업 최고레벨 인사 앞에서 연구를 소개하며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지난해 재학생 1명은 전 세계에서 85명만 선발하는 구글 PhD 펠로우십에 선정되기도 했다. 석사과정 학생 중에는 미국 정부 인사와 멘토링을 진행한 후 미국 싱크탱크 ‘우드로윌슨센터’에서 6개월간 북한 사이버 공격 정책 연구를 한 경우도 있다.”
―앞으로의 목표와 과제는 무엇인가.
“지난 5년간 배출한 졸업생 45명 중 36명이 취업에 성공했고 4명이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초반에는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교수와 학생, 대학, 정부기관이 협력하면서 지난해부터 운영이 안착되는 모습이다. 앞으로도 멘토링과 인턴십, 세미나 등에서 현업 전문가들과 교류를 강화하고 해외 연구 기회나 방문 연구 기회도 늘릴 생각이다. 융합보안 분야는 다른 분야에 비해 학업량이 많아 학생들도 어려워하지만 국가산업경쟁력 유지에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에서도 인재 양성 예산을 유지하면서 인재양성사업 노하우가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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