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는 19일 재직 여부나 특정 일수 이상 근무를 기준으로 지급하는 조건부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새로운 법리가 나온 것과 관련해 “사법부가 기업의 경영환경을 위축시키고 갈등과 혼란을 부추겨선 안 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입장문을 내고 “이번 판결은 2013년 대법원에서 재직자, 최소 근무 일수 조건이 있으면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전면적으로 뒤집어 통상임금 범위를 대폭 확대한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이날 현대자동차와 한화생명보험 전·현직 근로자가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의 상고심을 선고하면서 상여금의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요건으로 볼 아무런 근거가 없다며 고정성 기준을 폐기하는 것으로 기존 판례를 변경했다.
통상임금이란 소정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금품을 말한다. 이 통상임금을 기반으로 근로자가 받을 수 있는 수당·퇴직금 규모가 정해진다. 그간 판례는 근로자가 받는 수당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는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을 기준으로 판단해 왔는데, 이 기준이 바뀌게 된 것이다.
경총은 대법원의 판례 변경은 기업의 재무 부담을 가중할 뿐 아니라, 기존 판례에 따라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산입하지 않은 노사 합의를 무효로 만들어 소송전 등 예기치 못한 갈등과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총은 “우선 노사 간 합의를 통해 정기상여금을 기본급에 포함할 부분과 성과를 반영한 성과급으로 재편성해서 현재의 복잡한 임금체계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연공형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바꾸기 위해 노사가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재계는 기업마다 상여금 지급 체계와 종류가 판이한 만큼, 대법원의 새 법리가 어떤 후폭풍으로 번질지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내부에선 가뜩이나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시점에 경영 환경을 더 위축시킬 수 있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앞서 경총은 지난달 발표한 ‘재직자 조건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 시 경제적 비용과 파급효과’ 보고서를 통해 통상임금에 조건부 정기상여금이 산입되면 기업들이 연간 6조 8000억 원의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으로 분석했다. 통상임금 산입 여부에 영향을 받는 기업은 전체 기업의 26.7%를 차지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판결 취지는 이해하지만, 대내외 불확실성 속에서 고정비성인 인건비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기업들이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이번 판례로 다른 조건을 가진 상여금들에 대한 통상임금 포함을 근로자들이 요구해 관철된다면 경영 환경이 경직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회사별로 지급 방식의 차이가 있으니 자세한 건 뜯어봐야겠지만 대법원의 새 판례가 생겼으니 근로자 입장에선 퇴직금을 더 받을 기회가 생긴 것”이라며 “(노사 간) 소송이 훨씬 더 늘어날 수 있고 이는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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