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기소돼 집행유예…‘미투 운동’ 이후 재심 청구
대법 “불법 체포·감금 상태서 조사 받았다 볼 여지”
60년 전 성폭행범의 혀를 깨물어 집행유예 확정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에 대한 재심이 확정됐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전날 최 씨가 낸 재심 기각 결정에 대한 재항고를 받아들여 재심 청구를 기각한 원심 결정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최 씨는 형법학 교과서, 법원행정처가 법원 100년을 정리해 1995년 발간한 ‘법원사’ 등에 실린 이른바 ‘김해 혀 절단 사건’의 당사자다.
1964년 당시 만 18세였던 최 씨는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노 모 씨(당시 21세)에게 저항하다 혀를 깨물어 1.5㎝ 절단한 혐의(중상해죄)로 구속 기소돼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경찰은 최 씨의 정당방위를 인정해 노 씨를 강간미수, 특수주거침입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과 법원을 거치며 되레 최 씨가 ‘가해자’가 된 것이다. 반면 노 씨는 주거침입죄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그로부터 56년 후인 2020년 5월, 2018년부터 대두된 ‘미투 운동’으로 용기를 얻은 최 씨는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의 도움을 받아 부산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부산지법은 2021년 2월 “무죄로 볼 만한 명백한 증거가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최 씨는 변호인단과 함께 노 씨의 혀가 잘렸는데도 정상적으로 병영 생활을 했다는 증거 자료를 토대로 부산고법에 항고했지만 또다시 기각됐다.
최 씨는 수사기관에서의 불법 구금에 의한 재심 사유를 주장하며 재항고했다. 대법원은 “불법 구금에 관한 재항고인의 일관된 진술 내용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다”며 최 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재항고인은 검찰에 처음 소환된 1964년 7월 초순경부터 구속영장이 발부돼 집행된 것으로 보이는 1964년 9월 1일까지의 기간 동안 불법으로 체포·감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와 같은 검사의 행위는 형법 124조의 직권남용에 의한 체포·감금죄를 구성하며, 위 죄에 대해서는 형사소송법 422조의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 해당한다”며 “원심은 재항고인의 진술 신빙성을 깨뜨릴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반대되는 증거나 사정이 존재하는지에 관한 사실조사를 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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