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주도로 본회의 통과… 즉시 시행
학교장 재량 맡겨 채택률 낮아질 듯
이주호 “재의 요구… 지원 방안 마련”
수백억 투자 업체들 반발-소송 예고도
내년 전국 초중고교에 도입 예정이던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의 지위가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격하됐다.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AI 디지털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등이 의결된 것이다. 교육자료가 되면 학교에서 채택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 채택률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교육개혁 주요 국정과제였던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이 좌초 위기를 맞은 것이다.
● ‘AI 교과서’ 채택률 떨어질 듯
이날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교육부가 내년 3월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교 1학년의 영어 수학 정보 과목을 대상으로 도입되는 AI 디지털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규정했다. 공포 후 즉시 시행이며 지난달 검정을 통과해 현재 학교별로 채택 과정을 밟고 있는 AI 디지털교과서에도 적용된다.
교과서는 각 학교가 의무적으로 지정해야 하고 예산도 지원되지만 교육자료는 학교장 재량으로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자율 선택하게 된다. 이에 따라 학교 현장에서 AI 디지털교과서 채택률은 크게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교사노동조합연맹이 “AI 교과서 선정은 학교 자율에 맡기고 효과성 검증부터 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는 등 교사와 학부모 상당수가 학생 문해력 저하 우려 등을 들며 AI 디지털교과서 채택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탄핵 정국으로 정부의 정책 추진 동력이 떨어진 상태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은 유명무실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재의 요구를 제안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현장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AI 디지털교과서 사용을 희망하는 모든 학교에 대한 지원 방안을 시도교육청과 함께 마련하고, 교육 격차 해소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 업체 반발, 소송전 불가피
교육부는 시도교육청과 함께 대응하겠다고 했지만 시도교육감 입장도 엇갈리는 모습이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24일 AI 디지털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개정안을 유보해 달라는 입장문을 발표했지만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26일 “입장문에 유감을 표한다”며 다른 목소리를 냈다. 천창수 울산시교육감 역시 이날 “강은희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장(대구시교육감)이 합의를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입장을 발표했다.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교과서 도입을 전제로 개발에 참여해 온 AI 디지털교과서 업체들의 반발과 소송전 역시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정책을 믿고 최대 수백억 원을 들여 투자했는데 교육자료로 격하되며 채택률이 낮아질 경우 막대한 손해를 피할 수 없고 추후 확대 여부도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AI 디지털교과서 발행사 관계자는 “법안 효력 정지에 대한 가처분 신청부터 행정, 민사 소송 등 다양한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 다른 발행사들과 공동 대응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 역시 “이미 교과서 검정을 통과했는데 소급 입법을 통해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것이라 개발사에서 정부 신뢰 문제를 제기하며 소송하면 이기기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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