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월 전북의 한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70대 A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당장 응급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119구급대는 당시 권역외상센터 등 2곳의 대형 병원에 수술 가능 여부를 타진했다. 하지만 답변은 ‘불가’였다. 구급대는 A 씨를 사고 현장에서 35km 떨어진 전주의 한 접합수술 전문병원으로 옮겼지만, 여기서도 수술은 이뤄지지 못했다. A 씨는 결국 또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생을 마감했다. 사고 발생 1시간 20여 분 만이다.
전북도와 전북소방본부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막기 위해 내년 1월 1일부터 ‘전북형 응급환자 이송 체계’를 시행한다고 29일 밝혔다. 전북도와 전북소방본부는 이 체계 본격 시행에 앞서 올해 9월 사전 설명회와 시연회를 시작으로 시범 운영 등 사전 준비를 마쳤다.
전북형 응급환자 이송 체계는 현장에 출동한 119구급대원이 각 병원에 일일이 전화해 환자 수용 여부를 확인했던 그동안의 과정이 사라진다. 대신 올해 초 소방청이 구급 활동 정보와 이송 병원 선정 등을 통합‧관리하기 위해 만든 플랫폼인 119구급스마트시스템이 사용된다. 이에 따라 현장에 출동한 119구급대원은 중증도와 중상 등 표준화된 환자 정보를 단말기에 입력하고, 다수 의료기관이 실시간으로 수용 여부를 응답해 환자 상태에 맞는 최적의 병원을 신속히 찾아 이송하게 된다.
전북도와 전북소방본부는 시스템 구축을 위해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운영 중인 전북대와 원광대병원을 비롯해 24곳 병원과 협업체계를 만들었다. 24곳 병원에는 전북지역에는 전문 의료인이 없어 치료가 어려운 화상 환자 이송에 대응하기 위해 대전과 충북 오송의 화상 전문병원과 접합수술 등 특수 진료과를 운영하는 병원도 포함됐다.
전북형 이송 체계 ‘지휘소’ 역할을 맡을 119구급상황관리센터도 만들었다. 센터장엔 소방령을 임명하고, 구급 품질 관리 전문가와 구급대원 출신 팀장 4명을 중심으로 간호사·1급 응급구조사 등 16명을 배치해 24시간 운영한다. 센터는 병원 선정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병원 수용이 불가능하면 즉시 개입해 이송 병원을 직접 선정한다.
전북도 복지여성보건국도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전북대병원·원광대병원에 각각 병원 선정 전문 코디네이터를 2명씩 배치해 병상 현황과 의료진 가용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구급대원의 병원 선정 요청에 즉각 응답할 계획이다.
전북소방본부는 특히 환자를 수용할 병원과 현장 출동 구급대 간의 환자 중증도 분류 기준도 일원화했다. 이를 위해 전북소방본부 소속 모든 구급대원이 ‘병원 전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체계(Pre-KTAS)’ 훈련을 이수와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했다.
전북도와 전북소방본부는 이 같은 준비 과정을 토대로 지난달부터 시범 운영을 진행해 운영상 문제점을 바로잡았다. 11월 1일~12월 13일까지의 시범 운영 결과 1시간 이상 대기 사례(하루평균 3.06건)가 의정 갈등이 불거진 2월 20일~10월 31일(하루평균 4.31건)보다 29% 줄어든 것을 확인했다. 병원 이송 시간도 평균 19분 42초에서 19분으로 42초(3.5%) 단축했다.
이같은 시스템 도입으로 구급대원은 병원 선정 부담이 줄어 현장에서의 처지에 집중할 수 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의료기관 역시 응급환자의 분산 이송과 표준화된 환자 정보 수신을 통해 응급실 과부하를 막고 의료자원 운용의 효율성을 높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오숙 전북소방본부장은 “도민들이 응급 상황에서 신속하게 병원으로 옮겨져 진료받을 수 있도록 참여기관 간 협업체계를 강화하는 등 도민 생명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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