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 충돌 경고 2분만에 기장 “메이데이”… 4분뒤 착륙중 충돌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30일 03시 00분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긴박했던 사고 순간… ‘펑’ 소리후 오른쪽 엔진서 하얀 연기
1차 착륙 실패, 고도 높여 상공 돌아… 관제탑, 반대쪽 활주로 착륙 허가
바퀴 3개 모두 작동 안해 동체착륙… 활주로 담벼락 충돌, 순식간에 화염

29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 상공에 접근한 제주항공 7C2216편의 오른쪽 날개 엔진에서는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지상에서 당시 순간을 목격한 시민들은 “펑 하는 굉음이 들렸다”고 전했다. 이후 비행기는 고도를 낮추며 활주로로 접근했지만 랜딩기어(바퀴)가 밖으로 전개되지 않았다. 이례적일 정도로 낮게 날며 활주로에 접근한 비행기는 결국 바퀴를 내리지 못하고 동체로 착륙한 뒤 지면을 수백 m 미끄러진 끝에 활주로 벽에 부딪쳤다. 사고 현장에서 2km 떨어진 마을에 사는 김영준 씨(46)는 “비행기 엔진에서 불빛이 번쩍이더니 연기가 무섭게 피어올랐다”며 “‘쾅’ 하는 굉음 이후 폭발음이 연쇄적으로 시작됐다”고 말했다.

● “메이데이” 4분 만에 화염 휩싸여

이날 오전 1시 반(현지 시간) 태국 방콕에서 승객과 승무원 181명을 태우고 이륙한 비행기는 원래 오전 8시 30분 무안공항 1번 활주로에 착륙할 예정이었다. 무안공항 관제탑은 이날 오전 8시 57분경 비행기가 접근하자 새 떼를 조심하라며 ‘조류 충돌’ 주의 경고를 전달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후 비행기는 관제탑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버드 스트라이크(새 떼와의 충돌)’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사고 여객기 오른쪽 날개의 엔진 뒷부분에서 하얀 연기가 나오고 있다. 새떼가 엔진과 충돌해 고장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채널A 캡처
사고 여객기 오른쪽 날개의 엔진 뒷부분에서 하얀 연기가 나오고 있다. 새떼가 엔진과 충돌해 고장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채널A 캡처
당시 순간을 지상에서 촬영한 영상에서는 비행기 오른쪽 날개에 달린 엔진에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장면이 포착됐다. 왼쪽 날개와 엔진은 멀쩡했다. 공항 인근 주민 유정필 씨(40)는 “밖에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니 ‘펑’ 하고 큰 소리가 나더니 비행기 오른쪽 날개 엔진에서 불꽃이 한 번 터졌다”며 “그 뒤에도 ‘펑’ 소리가 몇 번 들렸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2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한 이근영 씨는 “멀리서 쾅쾅쾅 소리가 들려서 밖에 나가 보니 하늘에서 비행기가 오고 있는데 평소와 방향도 다르고 고도도 이상하게 낮았다”고 말했다.

관제탑 경고 2분 뒤 기장은 ‘메이데이’(긴급 구조 요청)를 선언했다. 비행기는 1차 착륙 시도에 실패한 뒤 다시 고도를 높여 공항 상공을 한 바퀴 도는 복행(고어라운드·go-around)을 했다. 관제탑은 반대쪽에 있는 19번 활주로에 착륙할 것을 허가했고 기장은 오전 9시경 2차 착륙을 시도했다.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로 인해 여객기의 랜딩기어(착륙 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착륙을 시도하는 여객기의 오른쪽 엔진에서 불이나고 있다(첫번째 사진). 여객기가 연기를 내뿜으며 동체로 미끄러지듯 활주로를 주행하고 있다(가운데 사진). 여객기가 활주로 끝 외벽에 부딪치고 있다. 독자 이근영 씨 제공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로 인해 여객기의 랜딩기어(착륙 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착륙을 시도하는 여객기의 오른쪽 엔진에서 불이나고 있다(첫번째 사진). 여객기가 연기를 내뿜으며 동체로 미끄러지듯 활주로를 주행하고 있다(가운데 사진). 여객기가 활주로 끝 외벽에 부딪치고 있다. 독자 이근영 씨 제공
하지만 앞바퀴 1개와 뒷바퀴 2개 등 바퀴 3개가 모두 작동하지 않아 동체 밖으로 전개되지 못했다. 비행기는 오전 9시 3분경 동체로 착륙한 끝에 미끄러져 담벼락에 굉음과 함께 충돌했다. 공항 인근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박지수 씨(69)는 “처음에 비행기가 못 앉고 다시 올라갔다가 하늘을 한 바퀴 빙 돌더니 다시 착륙을 했는데 쉬지 않고 쭉 가다가 (어디에) 부딪쳤다”며 “집이 흔들릴 정도로 비행기 기체가 펑펑 터졌다”고 말했다. 충돌 현장을 목격한 홍모 씨(38)는 “‘쾅’ 하는 굉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차올랐다”고 말했다. 비행기 조종석 부분부터 폭발이 시작됐고 기체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기체 주변 여기저기에선 회색 연기가 새어 나왔다. 메이데이 선언 불과 4분 만에 벌어진 참사였다.

● 현장 곳곳에 희생자… “의자 400m 날아가”

29일 방콕발 제주항공 여객기가 불시착 끝에 폭발한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경찰 등 관계자들이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검게 탄 비행기 꼬리날개가 보인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소방 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3분 29초에 “무안공항이다. 비행기가 추락했다”고 119에 첫 신고가 접수됐다. 이후 3분 동안 119에 “비행기가 추락해 불이 났다”, “랜딩기어가 내려오지 않았다”는 사고 신고가 줄줄이 접수됐다.

사고 이후 현장을 직접 목격한 40대 남성은 “기체 앞부분에 화재가 났고 대부분이 탔다. 희생자들은 곳곳에 튕겨 나가 있다”며 “사고 현장이 너무 참혹해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 사고 현장을 본 한 유가족은 “얼마나 충격이 컸는지 비행기 좌석이 사고 지점에서 400∼500m 떨어진 지점까지 날아가 있더라”고 전했다.

유가족들에 따르면 사고 직전 비행기 안에 타고 있던 한 탑승객이 휴대전화로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안에 유독 가스가 가득 차 있다”고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들은 가족들이 급히 공항으로 달려갔고 도중에 사고 상황을 알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항공#무안 여객기 참사#버드 스트라이크#랜딩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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