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기록 갈아치운 최악의 폭염… 가을까지 이상고온-폭우 이어져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31일 03시 00분


올해 한반도 휩쓴 이상기후 현상
전국 평균 기온-열대야 일수 등… 1973년 이후 역대 1위 기록 경신
9월에도 곳곳서 폭염경보 발령… 재앙 수준의 국지성 호우 급증
11월 말 기록적 폭설 내리기도… “내년에도 평균기온 높을 듯”

뉴시스
올해 한반도에는 유례없는 폭염과 폭우, 폭설 등 각종 이상기후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여름철(6∼8월) 전국 평균기온은 기상관측 사상 가장 높게 올랐고 역대 가장 많은 열대야도 나타났다. 인프라를 무너뜨릴 정도의 위력을 지닌 시간당 100mm 이상의 비는 장마철에만 9차례나 내렸다. 지난달 서울에는 1907년 근대 기상관측을 시작한 후 117년 만에 ‘11월 폭설’이 쏟아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 추세가 가속화되는 만큼 올해보다 내년에 이상기후가 더 자주, 강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 가을에도 폭염… 최악의 더위


30일 기상청에 따르면 올여름 각종 무더위 기록이 경신됐다. 전국 평균기온(25.6도), 평균 최저기온(21.7도), 열대야 일수(20.2일) 등에서 1973년 이후 역대 1위를 기록했다. 1973년은 기상관측망이 전국에 대폭 확충된 시기로 각종 기상기록의 기준이 되는 시점이다.

기온이 크게 오르면서 역대급 폭염과 열대야도 이어졌다. 여름철 전국 평균 열대야 일수는 20.2일로 평년(6.5일)의 3.1배에 달했다. 열대야는 전날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최저기온이 25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현상이다. 서울에서는 올 6월 21일 기상관측 사상 가장 이른 열대야가 나타난 것을 시작으로 39일 동안 더위 때문에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졌다. 일 최고기온 33도 이상인 폭염 일수는 24일로 역대 3위였다. 평년(10.6일)과 비교하면 2.3배나 됐다.

더위는 장마가 종료된 7월 하순부터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렸다. 티베트고기압과 북태평양고기압이 동시에 한반도를 뒤덮어 만든 ‘이중 열 커튼’이 무더위를 한반도 상공에 가뒀고 낮에는 폭염, 밤에는 열대야가 이어지는 패턴이 한 달여 동안 지속됐다. 우진규 기상청 통보관은 “올 6월 중순부터 습하고 더운 공기가 남서풍을 타고 한반도에 지속적으로 유입됐고, 두 거대 고기압의 이중 열 커튼이 태풍의 한반도 진입까지 막아 지속적으로 무더운 날씨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최악의 더위는 ‘가을 폭염’으로 이어졌다. 가을철(9∼11월) 전국 평균기온은 16.8도로 평년보다 약 2.7도 높게 나타나며 1973년 관측 이래 가장 높은 가을 기온을 기록했다. 9월 10일에는 전국 183개 구역 중 서울을 포함해 대전, 세종, 경기 파주시, 경북 포항시 등 69개 지역에 폭염경보가 내려졌다. 2008년 폭염특보제가 도입된 후 서울에 ‘9월 폭염경보’가 발령된 건 올해가 처음이었다. 폭염경보는 최고 체감온도 35도 이상이 이틀 넘게 지속될 것으로 보일 때 발효된다. 9월 19일에는 서울에 116년 만에 가장 늦은 열대야가 발생했고, 제주시 등 여러 지역에서도 가장 늦은 열대야 기록이 경신됐다.

● 기습적 물 폭탄과 눈 폭탄


더위뿐 아니라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폭우와 폭설도 이어졌다. 좁은 지역에 강하게 비가 퍼붓는 ‘국지성 호우’는 올 장마 동안 빈번하게 발생했는데 특히 7월 10일에는 전북 군산시 어청도에 시간당 146mm의 ‘극한 호우’가 쏟아졌다. 이는 200년 만에 한 번 내릴 만한 기록적 폭우로 국내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많은 시간당 강수량이었다. 또 전북 익산시 함라면(125.5mm), 충남 부여군 양화면(106.0mm), 경기 파주시 파주읍(101.0mm) 등 장마 기간에만 9곳에서 시간당 강수량이 100mm를 넘었다. 장은철 공주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시간당 50mm의 비가 내리면 앞이 잘 보이지 않고 시간당 100mm 이상이 내리면 약한 구조물이 파손될 수 있다”며 “어청도에 내린 비는 재앙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7월 17, 18일에는 이틀간 경기 파주시(판문점)에 634.5mm의 기록적 폭우가 내리기도 했다.

가을에도 역대급 폭우가 쏟아졌다. 9월 21일에는 경남 창원시에 하루 동안 397.7mm의 비가 내렸는데 이 역시 200년 만에 한 번 내릴 강수량이었다.

이상고온 현상은 ‘가을 폭설’로도 이어졌다. 11월 27, 28일 서울에는 28.6cm의 눈이 쌓여 역대 3번째 적설량을 기록했다. 경기 수원시에는 43cm의 눈이 쌓여 해당 지역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64년 이후 가장 많은 적설량을 기록했다. 공상민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늦가을까지 서해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 해기차(해수와 대기의 온도 차)에 의해 눈구름대가 발달했다”며 “수증기를 머금어 무거운 습설 형태로 눈이 내렸는데 이로 인해 많은 피해가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상청은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하게 평년보다 무더운 날씨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상청의 ‘2025년 봄 기후 전망’에 따르면 봄 평균 기온은 평년(11.6∼12.2도)보다 높을 확률이 50%로, 낮을 확률(20%)의 2배 이상이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올해 이상기후가 빈번했지만 먼 훗날 돌아보면 가장 정상적인 한 해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라며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서태평양 지역 해수면 온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등 이미 이상기후가 일상이 된 만큼 정부 차원에서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기후#폭염#열대야#폭우#폭설#지구 온난화#기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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