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입원 환자 6명 중 1명은 의학적으로 꼭 입원할 필요가 없지만 병원에서 장기요양 중인 ‘사회적 입원’ 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입원 환자가 전체의 50%가 넘는 요양병원도 117곳(7.8%)으로 조사됐다. 2010년대 우후죽순 설립된 요양병원들이 경쟁적으로 환자 유치에 나서면서 불필요한 입원과 건강보험 재정 지출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에 따르면 2022년 7월∼2023년 6월 전국 1494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 55만7678명 중 8만7145명(15.6%)이 ‘선택입원군’ 환자로 분석됐다. 선택입원군은 입원 치료 효과가 불확실하고 요양시설 입소나 재가 돌봄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더 적합한 환자를 말한다.
정부는 이런 환자들이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것은 기관 설립 목적과 거리가 멀고 불필요한 의료비를 지출하는 ‘사회적 입원’으로 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기간 선택입원군 환자의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은 총 4070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위암 수술을 받은 50대 박모 씨는 최근 1년째 광주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다. 항암치료 중인 박 씨는 혼자 거동하거나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불편이 없지만 요양병원에서 식단 관리와 면역 치료도 받을 수 있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입원을 결심했다. 병원에서는 박 씨를 입원 치료보다 외래 진료가 더 적합한 ‘선택입원군’ 환자로 분류하고 있다. 요양병원 선택입원군 환자는 진료비 본인부담률이 40%로 일반 환자(20%)보다 높지만 박 씨는 “(실손)보험이 있으니 병원비가 큰 부담은 안 된다”고 말했다.
● 선택입원군 62%는 65세 미만
1일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의 ‘요양병원의 선택입원군 환자 현황과 특성’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7월∼2023년 6월 전국 1494개 요양병원 입원환자 약 55만 명 중 15.6%(8만7145명)가 박 씨와 같은 ‘사회적 입원’ 환자로 나타났다. 이는 입원 기간 내내 ‘의료 최고도∼경도’ 단계가 아닌 ‘선택입원군’으로 분류된 환자를 추려낸 것이다. 입원이 꼭 필요하지 않지만 집에서 간병을 받을 상황이 안 되거나 본인이 입원을 선호해 장기간 병원에 머무는 환자들이다.
사회적 입원의 전체 규모만 분석한 기존 연구와 달리 이번 보고서는 연령, 질환, 소득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선택입원군 환자 중 65세 미만은 62.2%를 차지해 비선택입원군(13.2%)보다 젊은 환자 비율이 크게 높았다. 비선택입원군에선 노인 비중이 86.8%에 달했다.
질병 종류별로도 선택입원군에선 암 환자 비율이 68.8%로 가장 높았다. 비선택입원군에선 정신 및 행동 장애가 27.2%로 가장 많았고 암(20.3%), 신경계통 질환(14.2%) 순이었다. 연구를 수행한 박수경 건강보험연구원 보건의료인력지원연구센터장은 “선택입원군에 상대적으로 젊은 환자가 많다 보니 노년성 질환보단 암 환자 비율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 “재가 돌봄 체계 강화해야”
불필요한 요양병원 입원의 원인 중 하나는 병원들의 환자 유치 경쟁 때문이다. 요양병원 수는 2020년 1582개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9월 기준 1359개로 줄었다. 소규모 요양병원들은 중증도가 낮은 환자들을 유치해 실손의료보험 청구가 가능한 비급여 항목 처방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 일부 병원은 진료비를 환자에게 돌려주는 ‘페이백’(환급) 서비스를 내세우며 환자 유치에 나서기도 한다.
실제로 조사 대상 요양병원 중 6곳은 입원 환자가 모두 선택입원군인 것으로 나타났다. 선택입원군 환자가 50% 이상인 병원도 117곳에 달했다. 서울의 한 요양병원장은 “요양병원은 (건강보험 지급액이 정해진) 일당정액수가가 적용돼 100병상 미만인 곳은 건강보험 수가만으로는 경영이 어렵다. 이 때문에 돌봄 역할을 강조하며 입원이 꼭 필요하지 않은 환자들까지 적극 유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불필요한 요양병원 입원을 줄이도록 지역사회나 집에서 건강을 관리하는 돌봄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요양병원은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고비용 돌봄’ 구조”라며 “중증 질환을 겪은 뒤 회복기인 퇴원 환자들을 돌볼 수 있는 재가 장기요양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요양병원을 필요로 하는 환자 수를 추계하고, 설립 기준 등을 재정비해 무분별한 요양병원 설립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정부도 사회적 입원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정부는 급성기 병원에서 퇴원한 환자들이 요양병원 대신 ‘회복기 의료기관’이나 살던 곳에서 재택 의료 서비스를 받는 체계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내용은 대통령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도 논의 중이지만 특위 활동이 잠정 중단되면서 논의가 더딘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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