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北 사과-배상 못받고 떠나는 국군포로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3일 03시 00분


北책임 인정에도 집행까진 먼 길
생존 8명 고령, 재판공전 가능성 커
주변 “배상 못받고 사망 늘어” 한숨

육군 51사단 장병들이 27일 오후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귀환 국군포로 박 모 6·25 참전용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육군 51사단 장병들은 거동이 불편했던 고인과 자매결연을 맺고 가까이서 지원해 왔다. 2023.7.27/국방부 제공
“북한 측으로부터 배상금을 받게 되면 꼭 나라에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지난해 11월 향년 94세로 사망한 국군포로 노모 씨는 생전 이렇게 말해왔다고 한다. 노 씨는 6·25전쟁 때 북한에 억류됐다가 탈북했다. 2020년 7월 또 다른 국군포로 고 한재복 씨와 함께 북한을 상대로 포로 시절 겪었던 부당 노역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1심에서 승소가 확정됐다.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한 첫 승소였다.

하지만 북한으로부터 배상금을 받는 건 불가능했다. 노 씨 측은 북한 관련 기관인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을 상대로 후속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경문협은 북한 영상물을 사용한 국내 방송사 등으로부터 저작권료를 걷어 북한에 보내온 민간단체다. 노 씨 측은 저작권료를 북한에 주지 말고 배상금으로 달라고 했지만, 경문협 측이 “북한 저작권자들의 돈을 임의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며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2022년 1월 1심 재판부는 경문협에 ‘제3채무자’의 지위가 없다고 보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으며, 지난해 2월 항소심 재판부는 소 기각 판결을 내렸다. 상고심 판결은 지금까지 나지 않았고, 노 씨는 생전 바람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항소심에선 재판부가 판결을 쓰면서 유사 소송 판결문의 오자까지 베껴 써 ‘부실 재판’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처럼 북한의 배상 책임을 인정받고도 배상금 집행 소송 하급심에서 패소하거나 소송이 길어져 실질적 배상을 받지 못한 채 사망하는 국군포로들이 늘고 있다.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 8명도 고령이어서 실질적 배상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12월 24일 또 다른 국군포로 유영복 씨(95)와 고 이규일 씨 측도 서울중앙지법에 경문협을 상대로 한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 신청서를 제출했다. 만일 경문협이 채권압류 및 추심 지급을 거절할 경우 이들은 경문협을 상대로 추심금 청구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채권자들이 고령인 데다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않아 사실상 재판이 공전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국군포로 고 김성태 씨는 유 씨, 이 씨와 함께 2023년 5월 북한 상대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겼지만, 같은 해 11월 사망한 후에는 유족과의 접촉이 어려워져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 신청서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국군포로 소송을 대리하는 엄태섭 변호사는 “북한의 배상 책임만 인정되고 실질적으론 어떠한 배상도 받지 못한 ‘지연된 정의’ 상태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국군포로#배상 책임#배상금 집행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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