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 시장 덮친 ‘치매 운전자’, 약 중단후 10개월간 치료 방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3일 03시 00분


급속 악화 가능성 속 운전대 잡아… ‘치매치료 권고’ 7개월뒤 면허갱신
“치매라고 무조건 면허 못막지만… 갱신주기 축소-검사대상 확대를”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양천구 목동깨비시장에서 돌진한 70대 치매 운전자의 차량. 뉴시스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양천구 목동깨비시장에서 돌진한 70대 치매 운전자의 차량. 뉴시스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양천구 목동깨비시장에서 상인과 행인들을 차로 쳐 사망자 1명을 포함해 13명의 사상자를 낸 75세 치매 운전자가 최근 10개월간 치매 치료를 중단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치매 증상을 방치한 상태에서 차를 몰고 나와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전문가들은 약 복용을 중단하면 치매 증상 악화가 빨리 진행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치매 환자는 지난해 기준 100만 명 이상으로 파악된 가운데 관련 사고를 막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10개월간 치매 치료 방치 후 운전

2일 서울 양천경찰서에 따르면 가해 운전자 김모 씨는 2023년 11월 서울의 한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아 첫 3개월간 약을 복용했다. 그러나 약이 떨어진 지난해 2월부터는 치매 관련 진료를 받거나 약을 복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진단 이후 약 10개월간 치매를 사실상 방치하다가 지난해 12월 31일 운전대를 잡은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경찰이 의료기록을 확인할 수 없으나 운전자 가족을 통해 이런 내용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사고 당시 김 씨는 1종 보통면허를 소지하고 있었는데, 2022년 9월 적성검사 후 갱신된 상태였다. 경찰에 따르면 이미 김 씨는 2022년 2월 양천구 관내 보건소에서 치매 치료 권고를 받았다. 치매 치료를 권고받은 7개월 뒤 면허가 갱신된 것이다.

75세 이전 운전자의 경우 치매 증상이 있더라도 본인이나 의사의 신고 없이는 당국이 치매 사실을 파악하기 어렵다. 현행법상 면허 갱신을 위해 필요한 치매인지선별검사(CIST)는 75세 이상 운전자부터 3년 단위로 받는다. 당시 2022년 기준 72세였던 김 씨는 검사 대상이 아니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3년 12월 말 기준 전국 치매 환자 수는 60∼64세가 2만5799명, 65∼69세가 4만5700명, 70∼74세가 8만6119명이다.

● 치매 인구 증가, 면허 주기 등 갱신해야

고령화 탓에 치매 환자가 늘어나는 만큼 운전면허 갱신 주기를 좁히고 치매 검사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고령 치매 환자는 최근 10년 새 40만 명 가까이 증가했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2015년 62만5259명에서 지난해 105만2977명으로 늘었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 대비 치매 환자 비율(유병률)도 2015년 9.54%에서 지난해 10.52%로 올랐다.

전문가들은 치매 환자라고 무조건 운전면허 소지를 제한할 순 없지만 사고를 막기 위해 관련 검사를 강화할 필요는 있다고 조언한다. 특히 치매가 중증으로 진행되면 운동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반사신경이 느려진다. 브레이크 등 차량 조작 능력도 떨어질 수 있다. 인지 능력이 저하될 경우 집중력과 판단력이 함께 흐려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노란불일 때 계속 진행할지, 멈출지 등을 판단하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뒤에서 끼어드는 차량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치매로 인해 성격이 바뀌어 참을성이 저하되거나 충동적으로 바뀌는 경우에는 인지 능력이나 운동 능력이 정상이라도 교통사고 위험이 커질 수 있다.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치매 환자라고 해서 무조건 운전을 그만둬야 된다고 말할 순 없다”며 “주기를 단축해 운전 검사 능력을 자주 확인하고, 운전 능력이 떨어지는 속도가 빠를 가능성이 높은 경우 야간 운전이나 고속도로 운전을 제한하는 방식의 면허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령화#치매 운전자#운전면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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