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얼마 전 버스에서 겪은 일이다. 앞좌석에 앉은 노인 한 분이 뭔가 불편하신 듯 계속 자리에서 안절부절못했다. 곧 내리셔야 하는데 출구까지 빨리 걷지 못해 내릴 곳을 놓칠까 봐 불안하신 모양이었다. 결국 정차하기 전 일어나 출구로 향하시던 노인은 때마침 속도를 줄인 버스에 휘청이다가 그만 갖고 있던 지팡이로 앞에 있던 중년 여성의 머리를 세게 치고 말았다.
노인이 곧장 사과했지만 여성은 정말 많이 아팠는지 “어떻게 그렇게 때리실 수 있어요? 일부러 그러신 거 아니에요?”하고 톡 쏘아붙였다. 멀리서 기사가 “어르신, 그러니까 그냥 앉아 계시라니까요. 제가 세워 드린다니까” 했다. 노인은 연방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더니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를 내렸다. 창밖으로 힐끔 더욱 굽어진 듯한 노인의 등을 지켜보는데 괜히 먹먹해졌다. 우리 아빠보다 5살쯤 많으실까. 노인의 버스 이용은 버거웠고, 곧 우리 아빠의 이용도 그렇게 될 거라 생각하니 남일 같지 않았다.
● 고령운전 사고 늘자 쉽게 “운전 제한” 주장
요즘 심심찮게 나오는 뉴스가 고령 운전자의 사고 소식이다. 무안 제주항공 참사로 모두가 침통하던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목동깨비시장에서 한 운전자가 골목의 행인들을 치고 질주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속보를 보자마자 ‘혹시 운전자가 고령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지난해 7월 9명을 죽음으로 내몬 서울 시청역 참사를 비롯해 최근 이런 차량 질주 사고의 운전자가 대체로 노인이었던 탓이다. 아니나 다를까, 깨비시장 사고 운전자도 70대 중반의 노인으로 드러났다.
정말 고령일수록 사고를 많이 낼까? 고령 운전자의 사고는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9년 전체 교통사고의 14.5%였던 고령 운전자 사고 비율은 2023년 20.0%까지 올랐다. 그 수도 3만 3293건에서 3만 9641건으로 늘었다. 고령 인구가 늘어나니 당연한 일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연령별 사고 증가율을 따져도 고령 운전자의 증가율이 높았다. 삼성화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65세 이상 운전자의 추돌사고 증가율은 4년간 연평균 14.4%로 4%대에 불과한 20~50대를 크게 상회했다.
이쯤 되면 가장 쉽게 나오는 이야기가 고령 운전자의 운전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만 75세 이상 운전자는 3년에 한 번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받고 면허를 갱신해야 하는데, 검사를 강화해서 통과하기 어렵게 하거나 자진해서 면허를 반납할 수 있게 독려하자는 것이다.
누군가의 운전이 남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면 제한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앞서 본 노인을 떠올려 보면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운전을 못하게 하는 대신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은 충분할까?
● 보행약자 배려 부족, ‘교통 사막’ 지역도 곳곳에
네 번의 임신, 출산을 거치며 느낀 게 있다. 배가 부르고 몸이 무거워져 보니 대중교통 이용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른 배에 가려 발밑이 잘 보이지 않는데 지하철역마다 계단과 턱은 많아 늘 거북이걸음이었다. 버스들은 잘 기다려주지 않았고 만석일 때가 잦았다. 아이 손을 잡고 걸을 때면 횡단보도 신호는 왜 그리 짧은지. 초록색 불이 깜빡이기 시작하면 벌써 차들이 정지선을 넘어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고, 마지막엔 아이 손을 잡고 달리기 일쑤였다.
노인들은 내가 겪은 것과 같은 불편함과 위협을 매일 느낄 것이다. 많이 개선됐지만 우리 대중교통과 도로엔 여전히 보행 약자들을 위한 배려가 부족하다. 실제 편의를 고려하지 않고 요식행위로 만들어놓은 듯한 시설도 적지 않다. 몇 달 전 여러 노선이 교차하는 환승역에서 길 잃은 어르신을 도와드린 적이 있는데,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야 하다 보니 그것만 따라 위로 올라오다 전혀 엉뚱한 곳으로 오게 됐다고 했다. 편의시설이 있긴 하지만 실제 보행 약자들이 이용하려면 한없이 걷거나 돌아야 했던 것이다. “역 안에서만 한 시간을 헤맸다”는 노인이 그뿐만은 아닐 것이다.
지방 소도시나 시골은 더욱 심각하다. 서울 등 대도시는 불편해도 탈 대중교통이라도 있다. 하지만 지방엔 ‘교통 사막’인 지역이 적지 않다. 11년 전 육아휴직 중 지방 근무한 남편을 따라 3개월간 이런 교통 사막 지역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다. 버스는 30분~1시간 대기가 기본이었고 그나마 언제 올지 기약할 수도 없었다. 버스를 탄다고 원하는 목적지에 딱 떨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슈퍼라도 가려면 한참 걸어야 했다. 휴직 때라 여유가 있었다지만 소금 하나 사러 왕복 3시간씩 시간을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부분 농사일 등 생업에 종사하는 노인들도 마찬가지일 터다. 이런 곳에선 별도 교통수단이 보완되지 않는 이상 차가 필요했다.
● 운전보조장치 등 노인 이동권 보장안 찾아야
무작정 막고 제한할 일은 아니다. 노인들의 이동권은 건강과도 직결된다. 자주 활동하는 노인이 신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건강할 수밖에 없다. 관련 연구는 무수히 많다. 2023년 보건사회연구원이 노인 992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노인’ 그룹의 건강이 가장 좋게 나타났다. 굳이 연구를 찾지 않더라도 활력에 차서 열심히 활동하는 노인들이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훨씬 건강하고 오래 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로 들어서면서 노인들의 건강 관리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국민 5명 중 1명이 불행하거나 아프고 분노하는 사회는 여러 문제를 잉태할 수밖에 없다.
노인들의 권리를 지키면서 안전도 지키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노인의 운동, 인지기능을 보완하는 운전보조장치 도입이 한 방법이이다. 일본의 경우 비상자동제동장치, 페달조작오류·급발진 억제 장치, 차선이탈 경보 장치 등 보조장치를 단 ‘서포트카’를 구매할 때 보조금을 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도 특정 연령 이상이 이런 장치를 단다고 하면 비용을 보전하는 식으로 보조장치 장착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대중교통도 보행 약자들을 위한 시설을 보강해야 한다. 노인들을 위한 이동 수단과 안내를 늘리고 편의시설, 좌석도 늘어나는 노인 수에 걸맞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고령 인구가 늘면 휠체어 등 보행보조기기를 이용하는 인구가 많아질 텐데 이들 이동방안도 감안해야 한다.
교통문화 개선 노력도 필요하다. 해외 대학에서 근무하는 한 교수님이 한국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갔던 경험을 공유한 적이 있다. 정차할 곳이 마땅찮아 잠시 도로변에 차를 붙이고 부모님을 내리는데, 뒤차들이 내내 클랙슨을 울리며 빨리 가라고 재촉했다고 한다. 것이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도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버스는 빨리 떠나고, 조금만 느리거나 정차해도 사람들의 불만이 쏟아진다. 이런 문화에서 노인들이 설 자리는 없다.
● 누구나 노인이 된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 나의 아빠도 곧 그 버스의 노인처럼 거동이 불편해지실 테고, 나 역시 20년 남짓 남았을 뿐이다.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내 부모님뿐 아니라 나의 하루도 발이 묶일 것이다. 건강수명이 길어지는 만큼 이동권의 수명도 길어져야 한다.
그 다음 운전 제한을 논해야 제한도 실효성을 찾을 수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체 운전자 중 면허를 반납한 비율은 권고를 시작한 2019년 이래 내내 2% 초반대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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