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국제공항인데…” 참사가 들춘 항공교통후진국 ‘민낯’

  • 뉴시스(신문)
  • 입력 2025년 1월 5일 09시 50분


‘조류 충돌’ 위험 늘 존재했지만 설비 투자 ‘소홀’
활주로 이탈 사고 피해 줄일 긴급장치는 권고 뿐
‘대참사 화근’ 콘크리트 둔덕, 국제표준 정반대로
개항 17년간 활성화 무산, 이착륙 안전시설 뒷전

30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 전날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 여객기의 잔해와 동체 착륙의 흔적이 남아 있다. 2024.12.30 뉴시스
30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 전날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 여객기의 잔해와 동체 착륙의 흔적이 남아 있다. 2024.12.30 뉴시스
‘국내 최악의 여객기 사고’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배경 중 하나는 국제공항에 걸맞지 않았던 항공기 운항 시설이 꼽힌다.

전남무안공항은 무수한 위험 징후에도 조류 퇴치 설비에 대한 투자는 미미했다. 참사를 키운 화근으로 꼽히는 콘크리트 둔덕은 손쉽지만 국제 표준과는 거리가 먼 가장 위험한 방식으로 보강됐다.

5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조종사·관제사 간 음성교신 기록 등으로 미뤄 참사 당일 사고 여객기는 조류 충돌로 인한 오른쪽 엔진부터 불능 상태에 빠지며 첫 착륙에 실패했다.

이후 다시 떠올라 재착륙을 시도하려 했으나 기체 엔진, 기체 착륙 장치(랜딩기어), 착륙 시 감속장치 등이 총체적인 조작 불능 상태에 빠지며 이번 사고로 이어졌다.

기체에 처음 문제가 생긴 요인으로 꼽히는 ‘조류 충돌’은 예견된 위험이었다.

무안국제공항은 철새가 집단서식하는 간척지 주변에 지어져 조류 충돌 위험이 적지 않았다. 공항과 맞닿은 창포호는 간척지 개간으로 조성된 저수지로, 멸종위기 1급 황새와 가창오리가 무리지어 서식한다.

철새들은 바닷물이 밀려오는 만조 시간(오전 8~9시께) 먹이 활동을 하지 않을 때 집단으로 비행한다. 관제사가 ‘조류 회피 ’에 주의하라 조언하고 조종사가 ‘조류 충돌에 의한 조난 신호’를 보낸 시간대와도 겹친다.

야생동물 보호단체 관계자도 사고 당시 상황, 조류 서식지와 집단비행 시간대 등을 토대로 “사고 시간대와 비슷한 오전 9시3분께 비슷한 사고 지점에서 가창오리떼가 날아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사고 당시 공항 상공에서 5㎞ 떨어진 지점에서 양쪽 엔진 모두 조류가 빨려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실제 무안공항은 최근 6년간 운항 편수 대비 조류충돌 발생률 0.09%로 전국 14개 지방공항 중 가장 높다.

활주로 연장사업 과정에서 국토부는 무안공항 활주로 연장사업 과정에서 전략환경영향평가(2020년)와 환경영향평가(2022년) 모두 조류충돌 위험성을 경고했다.

두 평가 모두 폭음기·레이저·LED 조명 등 조류 퇴치시설을 충분히 갖춰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공항에는 조류 탐지레이더와 열화상 탐지기 등이 없었다. 조류를 퇴치하는 야생동물통제대(4명)도 3교로 운영, 사고 당시 1명만 투입됐다.

무안공항에는 불가피하게 동체 만으로 비상착륙해야 하는 상황에서 피해를 줄이는데 가장 효과적인 긴급착륙제동장치(EMAS)도 없었다.

EMAS는 항공기 활주로 이탈 사고에 대비, 안전하게 정지시키기 위해 활주로 끝에 설치되는 시설이다.

활주로 바깥 지면에 하중에 부서지기 쉬운 경량 바닥재를 깔아, 해당 구간에 진입한 기체가 부서지는 바닥재 밑 ‘모래 늪’에 빠지면서 강제제동하는 원리의 장치다.

전문가들은 활주로 끝단∼로컬라이저(LLZ) 콘크리트 둔덕 사이 구간에 EMAS가 설치됐더라면 충돌 전 극적으로 화를 면하
거나 최소한 충돌 충격을 크게 줄였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도 활주로 종단 주변 안전구역을 단축하는 조건으로 EMAS 설치를 권고했고, 국토부도 EMAS 설치 필요성에는 공감했으나 실제 설치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활주로 끝단으로부터 251m 떨어진 LLZ 콘크리트 둔덕은 여러 차례 보강 공사를 거쳐 견고한 옹벽으로 변해 이번 사고의 화근이 됐다.

사고가 발생한 무안공항에 설치된 LLZ 안테나는 2m 높이의 흙으로 덮인 콘크리트 둔덕 위에 지어졌다.

2007년 무안공항 개항 당시부터 콘크리트 기둥 19개와 흙이 채워진 구조였으나, 비바람으로 인해 구조물이 드러나자 두 차례 보강 공사를 거쳤다.

2021년 현대화사업을 통해 사고가 난 둔덕 보강공사에는 무려 콘크리트 127t이 추가로 부어졌다. 2023년에는 대형 콘크리트 상판(길이 40m·폭 4.4m·두께 30㎝)까지 증설한 뒤 LLZ 안테나를 상판 위에 심었다.

착륙 유도를 위한 방위각 시설로서 활주로 정면을 바라보고 서 있는 LLZ 안테나의 특성상, 지지대인 콘크리트 구조물은 항공기 이착륙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종단안전구역’ 국제 표준은 활주로 끝단에서 300~305m 내에는 장애물이 없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무안공항은 251m 안에 충돌하면 기체가 산산조각날 정도로 견고한 벽을 쌓은 셈이다.

인천국제공항 등 세계 주요 국제공항은 LLZ 레이더를 지하 매립형 콘크리트 기단이나 파손성(Frangibility·부서지기 쉬움) 철제 구조물 위에 설치한다.

반면 무안공항은 개항 당시 설치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교체하기는 커녕, 되려 콘크리트를 더 붓고 덧대 내구성만 강화하는 손쉬운 방식을 택했다.

지역 내 다른 공항도 사정은 비슷하다. 광주공항은 LLZ 안테나 지지대로 70㎝ 높이 콘크리트 구조물을 썼다. 여수공항은 무려 높이 4m의 콘크리트 둔덕 위에 설치, 흡사 벙커를 연상케 할 정도다.

명색이 국제공항인 무안공항의 눈높이는 달라야 했다. 미국·유럽 등 항공교통 선진국 주요 공항이나 국제기구 표준을 염두에 두고 시설을 보완해야 했지만 크게 미치지 못했다.

근본 배경은 저조한 이용 수요, 그에 따라 줄어든 설비 투자라는 분석이 나온다.

무안공항은 ‘연간 992만명 이용 서남권 관문공항’을 목표로 지어졌지만 개항 이래 17년간 활로를 찾지 못했다. 중장기적으로 민·군 통합공항인 광주공항 국내선을 통합하려 했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동남아를 중심으로 명맥을 잇던 국제선 운항이 2023년까지 중단되기도 했다.

활성화 대책으로 ▲대형여객기 이착륙 가능 활주로 연장 사업(2800m→3160m) ▲호남고속철도 2단계 사업 등을 추진했으나 진척이 더뎠다.

‘엎친 데 덮친 격’ 이번 참사로 국가 기간시설이자 광주·전남·전북 내 유일무이한 국제공항은 개항 이래 중대 기로에 섰다.

[무안=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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