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여는 사람들] 〈3〉 제주4·3 재심 권고 합동수행단
4·3사건 불법재판 피해자 구제 위해… 대검찰청 차원에서 직접 조직 구성
수형인-유족 찾아내 재심 청구하고… 검사가 업무 전반 도맡아 무죄 구형
“현재까지 1863명 명예 회복 도와”
“피고인이 범죄 사실과 같은 행위를 저질렀다고 볼 증거가 없기에 무죄를 구형합니다.”
지난해 12월 10일 제주 제주시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 제주4·3사건 직권 재심 권고 합동수행단(단장 강종헌 부장검사·이하 합수단)은 70여 년 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피해자에 대해 무죄를 구형했다. 제주4·3 당시 제주도민들은 적법 절차를 건너뛴 불법적인 재판을 받고도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당시 군사재판에 회부된 도민은 2530명, 일반재판에 회부된 도민은 1800여 명이었다. 이 중 상당수는 군경에 학살당했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도 가족이 연좌제로 피해를 볼까 봐 입을 다물었다. 합수단은 이들의 억울함을 풀고 당시 정부가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 중이다.
● 합수단, 피해자 유족들 찾아내 재심 청구 지원
긴 침묵을 깬 것은 군사재판을 받았던 생존 수형인 18명의 용기였다. 2017년 4월 ‘4·3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한 도민연대’가 18명을 발견, 설득해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들 18명의 나이는 많게는 97세, 적게는 85세였다.
2019년 1월 17일 제주지방법원은 “단기간에 다수의 사람을 집단으로 재판에 회부하면서 재판 절차가 제대로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하기 어렵다”며 18명에게 무죄 취지인 ‘공소 기각’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숨죽여 살던 생존 수형인은 물론 사망한 수형인의 유족까지 잇따라 재심을 청구했다. 하루에 재심 선고 피고인이 300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 당시 선고를 내린 한 판사는 “좌익분자 500명 잡자고 3만 명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 법치국가에서 가능한 일인가. 야만적 시대를 살아낸 유족들에게 재판부는 경의를 표한다”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합수단은 재심 선고가 이어지던 2021년 11월 24일 출범했다. 대검찰청 차원에서 직접 불법 재판 피해자 구제를 위한 조직을 만든 것이다. 합수단 출범식에 참석한 김오수 당시 검찰총장은 “제주4·3 당시 우리의 사법 체계는 국민의 인권 보장과 법치주의 수호라는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며 “당시 최소한의 법 보호도 받지 못했던 희생자와 그 유족에 대해 참으로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사죄했다.
합수단은 출범 이후 군법회의, 일반재판 수형인과 그 유족을 찾아내 법원에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하고 있다. 70여년 전 한문으로 작성된 수형인명부부터 재판 기록, 제적등본, 족보까지 훑어 재심 대상자를 찾는다. 현재까지 합수단을 통해 억울함을 푼 수형인은 1863명(군법회의 1662명, 일반재판 201명)에 달한다.
● 97세 피해자 위해 부산 출장 재판도
왕선주 합수단 검사(연수원 38기)는 지난해 12월 31일부터 이달 3일에 걸쳐 서면과 제주시 연동 소재 합동수행단 사무실에서 진행된 본보 인터뷰에서 “제주4·3과 같은 역사적 비극이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합수단 검사 3명 중 왕 검사는 자료 조사부터 검토, 분석, 재심 대상자 선정, 재심 청구, 공판 출석까지 업무 전반을 도맡고 있다.
왕 검사에게도 70년이 훌쩍 지난 사건을 다루는 것은 쉽지 않다. 판결문이나 수감자료에 기재된 한자들의 글씨체가 모두 다른 데다 약체나 휘갈겨 써진 경우도 많아 읽어내는 데 어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행방은커녕 생존 사실 자체가 확인되지 않는 수형인도 부지기수다.
왕 검사는 “애매한 한문은 한자 사전과 재심 자료를 검색해 찾아내지만, 이마저도 어려운 경우에는 합수단 직원이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해독에 나선다”며 “정확한 인적 사항 확인이 필요한 수형인의 경우 행정기관을 방문해 제적등본을 전수조사하는 것은 물론 월북 여부 검토를 위해 통일부에 남북이산가족상봉 신청 대상자 중 재심 대상자가 있는지 문의하기도 한다”고 했다.
왕 검사에게 기억에 남는 재심 대상자를 물었더니 군법회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아 옥살이했던 오모 씨(97)를 떠올렸다. 오 씨는 아픈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며 재판을 거부했지만 왕 검사를 비롯한 합수단의 끈질긴 설득 작업 끝에 작년 2월 6일 재심이 성사됐다.
왕 검사는 “건강이 좋지 않은 오 씨를 위해 부산까지 출장 재판을 하러 갔다”며 “완강히 재판을 거부하던 오 씨가 무죄가 선고된 뒤 ‘감사하다’는 말을 거듭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떠올렸다. 왕 검사의 올해 목표는 ‘한 분이라도 더, 하루라도 더 빨리’다. 유족마저 고령으로 접어든 상황에서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왕 검사는 “(합수단 업무를 하면서) 수형인과 그 유족들이 오랜 세월 고통을 당한 사실을 알게 돼 너무나 안타까웠다”며 “올해도 군법회의와 일반재판 수형인에 대한 재심 청구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억울한 희생자를 한 분이라도 더 빨리 구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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