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집 앞에서만 1시간을 돌아서 들어갔어요. 요즘 시위대 스피커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잠도 못 자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거주하는 30대 남성 A 씨는 “여기 사는 사람은 지나가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경찰한테 몇 번을 얘기했는데도 안 되더라. 이게 다 이상한 사람 하나 때문 아니겠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A 씨는 집 앞에서만 약 1.5㎞를 돌아가야 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동안 한남동 관저 인근은 ‘집회 격전지’로 변모했다. 고급 주택가와 트렌디한 골목상권이 자리 잡아 한적한 동네였던 한남동은 최근 집회 탓에 몸살을 앓고 있다.
7일 한남동 관저 주변은 체포영장 집행 기간이 전날 만료되면서 집회·시위도 잦아든 모습이었다. 당장은 소강상태지만 공수처가 지난 6일 영장을 재청구하면서 언제 다시 충돌이 일어날지 모르는 ‘폭풍 전야’에 가까운 상태다.
전날 집회가 열렸던 장소에는 ‘이재명 구속하라’고 적힌 피켓과 컵라면 상자, 종이박스 등 쓰레기가 성인 허리 높이로 쌓여있었다. 인근 건물 관리인은 쓰레기를 치우면서 ‘누가 버리고 갔느냐’고 탄식했다. 관저 인근 식당과 편의점 등 상가 곳곳에는 ‘화장실 사용 금지’ 안내문이 나붙었다.
한남동은 체포영장이 발부된 지난달 31일부터 본격적으로 붐비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체포영장 집행에 맞서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관저 앞으로 집결했다. 탄핵·체포를 촉구하는 단체도 연일 집회를 열었다. 지난 6일 하루에만 주최 측 추산 1만 5000명이 모였다.
각종 집회·시위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리면서 인근 주민들은 소음과 쓰레기 등으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한남동 일대 교통이 마비되고 시민들 발길이 끊기면서 주변 상인들은 매출 타격을 호소했다.
한남동에서 12년째 빵집을 운영 중인 김 모 씨(50·남)는 “시위가 시작된 이후로 매출이 거의 20% 정도는 줄었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그나마 저희는 한자리에서 오래 하다 보니까 단골손님이라도 찾아와 주시는데 처음 오픈한 매장은 거의 매출이 0원일 것”이라며 “이거 장기화하면 정말 큰일”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 사장 박 모 씨(30대·남)는 “가게 앞 골목 출입을 아예 막아놔서 매출 타격이 컸다”며 “커플이나 직장인 분들이 많이 찾는데 시끄럽기도 하고 교통 때문에 진입도 어려우니 누가 오겠나”고 말했다. 그는 “이 건물에 사는 주민들은 소음 때문에 새벽까지 민원이 빗발쳤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상인 C 씨(30대·남)는 “집회 때문에 못 오겠다며 예약이 줄줄이 취소됐다”며 “집회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닌데 주변 피해가 심하다 보니 엉뚱한 데로 불똥이 튈까 봐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한남동 일대 교통이 마비되면서 인근을 거쳐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은 도로에 갇히기 일쑤다. 한남대로 주변은 집회 도중 차량이 시속 10㎞도 내기 힘들 정도였다. 전날까지 버스정류장 전광판에는 ‘무정차’ 문구가 표시됐다.
지난 3일 한남동에서 만난 직장인 김혜인 씨(24·여)는 “지금 돌아가야 해서 40분 지각할 것 같다. 죄송하다”며 다급한 목소리로 통화했다. 김 씨는 “차가 너무 막혀서 한남오거리에서부터 걸어왔는데 여기서도 이렇게 길을 막으면 어떡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70대 남성은 관저 방면으로 건너가는 육교에서 경찰 통제에 가로막히자 “노인네가 무릎 수술을 해서 다리가 아픈데 어떻게 돌아가라는 거냐”며 “관저 가는 게 아니라 육교만 건너겠다는 건데 왜 막냐”며 신경질을 냈다.
한편 공수처는 지난 6일 법원에 윤 대통령 체포 영장을 재청구했다. 공수처는 지난 3일 체포영장 집행을 시도했지만 대통령 경호처에 가로막혀 철수했다. 관저 앞 체포 찬반 세력 간 갈등 상황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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