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강원 동해안에서 조업 중 북한에 납치됐다가 귀환한 뒤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납북귀환어부에게 국가가 손해를 배상하라고 법원이 판결했다.
춘천지법 속초지원 민사부(재판장 김현곤 지원장)는 9일 김춘삼 납북귀환어부 피해자모임 대표 등 납북귀환어부 4명이 ‘피고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에서 이들에게 2500만원 안팎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의 판결로 국가는 김 대표에게 2260만원800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법원은 피고를 향해 납북귀환어부 B 씨에겐 2710만800원, C 씨 2210만원800원, D 씨에겐 2613만9261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또 이들의 가족들에게 많게는 800만 원에서 적게는 100만 원 상당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납북 피해 어부들은 귀환 후 불법 구금 상태에서 구타와 각종 고문 등 극심한 가혹 행위 및 허위 진술을 강요당하고 이에 따라 형사 처벌을 받게 됐다”며 “이후 이들과 가족들은 불법적으로 감시와 사찰을 당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간첩으로 몰리는 등 명예를 훼손 당했음이 인정된다”고 봤다.
다만 “당시 정치, 경제 여건, 국방력 등을 고려하면 피해 어부들의 납북을 방지하지 못한 대한민국에게 그 책임을 묻기 어려우므로 이 부분은 불법 행위에서 제외한다”고 판시했다.
위자료 산정과 관련해선 “대한민국의 이런 행위들은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납북피해 여부와 가족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면서도 “이 사건과 유사한 국가배상 판결에서 인정된 위자료 액수와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산정한다”고 밝혔다.
이들 납북귀환어부 4명은 1970년대 강원 동해안에서 조업 중 고성군 거진항을 납북됐다가 귀환 후 반공법위반 등으로 처벌받았다. 50년 세월 당국의 사찰과 ‘간첩’이라는 이웃주민들의 눈흘김을 견디며 살아야 했다. 그런 이들에게 이날 법원의 판결은 허탈함으로 다가왔다.
재판장도 납북귀환어부들을 향해 이례적으로 사과했다.
김현곤 재판장은 “위자료를 많이 인정해 드리고 싶었으나 최근 다른 납북 어부 피해 사건과의 균형, 형평도 고려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을 양해해 달라”며 “과거 50여 년 전 법원을 비롯해 국가기관이 적법 절차 준수와 기본권 보장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국가기관과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재판을 마치고 나온 이들은 항소를 시사했다.
한 납북귀환어부는 “이 사건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당시의 불법 구금과 고문, 구타 뿐 아니라 이후 수십 년 세월 당사자와 가족을 사찰한 것”이라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다 인생이 잘못된 가족들도 많은데 이런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이들은 전남권 납북귀환어부들과 연대해 특별법 제정을 위한 활동도 시사했다.
이 사건을 수임한 법무법인 원곡의 최정규 변호사는 “납북 귀환 이후 당국의 불법구금과 가혹행위, 사찰 부분은 이번 판결로 인정을 받았다”면서도 “재판 과정에서 ‘납북되는 과정 자체가 국가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지만, 당시 국방력 수준 등을 이유로 인정 받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위자료 산정 부분에 대해선 “법원에서 납북 귀환어부 뿐 아니라 여타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한 위자료가 형성돼 있었다”며 “해당 법원도 기존 판례 안에서 위자료를 산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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