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법원 ‘軍수뇌, 박정훈 대령에 부당 명령’ 판단… ‘尹외압’ 수사 탄력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10일 03시 00분


[‘채 상병 사건’ 박정훈 대령 무죄]
군인 사망, 민간수사기관에 이첩해야… 해병대사령관, 부당한 지시로 막아
‘尹격노’에 이종섭 국방 등 외압의혹… 軍수뇌 직권남용혐의 적용 가능해져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항명 등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9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선고. 피고인은 무죄.”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중앙지역군사법원 법정. 군형법상 항명 및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게 1심 무죄가 선고되자 해병대 전우회 등이 가득 메운 방청석에서 “만세!” 등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박 대령은 법정에서 어머니 김봉순 씨와 포옹하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2023년 10월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기록의 경찰 이첩을 보류·중단하라는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지 15개월 만이었다.

군검찰은 징역 3년을 구형했지만 군사법원(재판장 김종일)은 “박 대령이 받은 지시는 정당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모든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박 대령은 그동안 이른바 ‘VIP 격노설’을 제기하며 윤석열 대통령의 외압으로 위법한 지시가 내려왔다고 주장해 온 만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관련 수사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 “이첩 보류 지시 정당하지 않아”

군검찰은 김 전 사령관이 2023년 7월 31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이첩 보류·중단 지시를 받고 박 대령에게 지시했지만, 박 대령이 이를 무시하고 다음 달 2일 경북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해 항명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 전 사령관의 지시와 의도, 방법 등이 정당한 명령으로 보기 어렵다”며 항명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김 전 사령관의 지시 자체가 개정 군사법원법의 취지에 맞지 않아 부당하다는 것이다. 개정 군사법원법에 따르면 군인 사망 사건 등 군사법원이 관할하지 않는 범죄는 ‘지체 없이’ 민간 법원에 이첩해야 한다. 법에 따라 지체 없이 사건을 이첩하려 했던 박 대령을 김 전 사령관이 부당하게 막았다는 것이다.

군사법원은 “김 전 사령관의 지시도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김 전 사령관이 이첩이 (2023년) 8월 9일에 필요하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이나, 명확하게 (지시를) 했다기보다는 박 대령을 포함한 사람들과 토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전 사령관이 군검찰 조사에서 “정훈공보실장, 수사단장과 삼자 회의를 했다. 민간 이첩을 언제하면 될지에 대한 토의가 주된 내용이었다”고 진술한 점이 근거였다.

군검찰은 박 대령이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 전 장관이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도 형사 처벌의 대상이 돼야 하냐’란 질문을 했다”고 말한 것이 허위 사실이라며 상관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상관 명예훼손의 경우 거짓 사실을 퍼트렸어야 하는 것인데, (박 대령의 발언은) 허위 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 ‘VIP 격노 외압’ 의혹 수사 정당성 확보

법조계에선 이날 판결로 공수처 수사3부(부장검사 이대환)가 2023년 8월부터 진행해 온 채 상병 사건 외압 의혹 수사도 법적 정당성을 확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사건은 해병대 수사단이 임 전 사단장을 업무상 과실치사 피의자로 특정해 경찰에 이첩하려 했으나, 윤 대통령이 격노한 후 국방부 수뇌부가 개입해 이첩이 보류됐다는 의혹이 골자다.

이날 재판부는 ‘VIP 격노설’ 등을 구체적으로 판단하진 않았지만, 김 전 사령관의 이첩 보류 지시가 부당하다는 점은 인정했다. 따라서 당시 이 전 장관 등 군 수뇌부에 직권남용 혐의 적용이 가능해졌고,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윤 대통령도 같은 혐의를 적용해 수사할 수 있는 법적 정당성을 확보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공수처 수사 결과 이 전 장관이 2023년 7월 31일 대통령실 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받은 직후 김 전 사령관에게 이첩 보류를 지시했고, 8월 2일 윤 대통령이 개인 휴대전화로 이 전 장관에게 전화한 후 박 대령이 보직 해임된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다만 공수처가 현재 12·3 비상계엄 선포로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 수사에 인력 전체를 투입하며 수사를 잠시 중단한 점은 변수로 꼽힌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수사가 재개된다면 이 전 장관 등 군 수뇌부 조사부터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채 상병 사건#VIP 격노설#박정훈 해병대 대령#공수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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