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석위 선반서 ‘타닥타닥’… “불이야” 삽시간에 검은 연기 퍼져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31일 03시 00분


아찔했던 ‘에어부산 여객기’ 화재
기내 뒤쪽서 소리 난 뒤 붉은빛… 승무원 진화 시도했지만 불길 커져
기장 “탈출하라” 방송에 아수라장
일부 승객 “승무원이 문 안 열어줬다”… 항공사 “불길 번질 우려, 매뉴얼 대응”
잇단 사고에 저비용항공 불안 커져

28일 오후 10시경 김해국제공항 계류장. 홍콩행 이륙을 준비하던 에어부산 BX391편의 출발이 지연되고 있었다. 오후 9시 55분 출발 예정이던 여객기는 문을 닫고 안전 교육도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앞 비행기와의 간격 때문에 20분 정도 지연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승객들은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이륙을 기다렸다. 지연 방송 약 15분 뒤 기내 뒤쪽에서 갑자기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기내 뒤쪽인 28∼30열 좌석 위 수화물 선반(오버헤드 빈)에서 ‘타닥타닥’ 하는 소리가 나더니 붉은빛이 선반 틈새로 삐져나왔기 때문이다.

승객들이 “불난 거 아냐?”라며 웅성이자 승무원들은 “다칠 수 있으니 선반 문을 열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한 뒤 소화기를 가져와 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거세진 화염을 막긴 역부족이었고 검은 연기가 삽시간에 기내 앞쪽으로 퍼져 나갔다.

● ‘비상 탈출’ 선포에 기내 아수라장

비상슬라이드로 탈출하는 승객들 28일 부산 강서구 김해국제공항에서 홍콩행 에어부산 여객기에 화재가 발생해 승객들이 비상슬라이드를 타고 탈출하고 있다. 부산=뉴스1
비상슬라이드로 탈출하는 승객들 28일 부산 강서구 김해국제공항에서 홍콩행 에어부산 여객기에 화재가 발생해 승객들이 비상슬라이드를 타고 탈출하고 있다. 부산=뉴스1
“이베큐에이트(evacuate·대피)! 이베큐에이트!” 승무원의 화재 발생 보고를 받은 기장은 유압기 등 연료 계통을 차단한 뒤 바로 ‘비상 탈출’을 선포했다. 놀란 일부 승객들은 급히 자리를 벗어나 앞쪽으로 이동했고 이 과정에서 서로 몸이 뒤엉켜 기내는 아수라장이 됐다.

앞쪽과 뒤쪽 비상구 출입문 7개가 개방되고 슬라이드가 설치되자 승객들이 서둘러 탈출하기 시작했다. 승객 169명, 정비사 1명, 승무원 6명 등 176명 전원 탈출에 성공해 무사했지만 7명은 경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일부 승객이 탈출 과정에서 좌석 등에 부딪쳐 타박상을 입었고, 승객들을 먼저 탈출시킨 뒤 가장 늦게 내리느라 연기를 많이 마신 승무원들이 병원으로 이송된 것이다. 탈출에 성공한 일부 승객들은 땅에 발을 디딘 뒤에도 공포에 떨며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한국공항공사 소방대, 공군분대 소방대가 가장 먼저 도착해 초동 대처에 나섰다. 부산 강서소방서는 오후 10시 38분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펌프차 13대 등 장비 68대를 동원해 진화에 나섰다. 큰불이 잡힌 이후에도 작은 불씨까지 확실히 잡기 위해 일부 대원이 기내로 진입했고, 화재 발생 1시간 16분 만인 오후 11시 31분경 불을 완전히 껐다.

비상슬라이드로 탈출하는 승객들 탈출한 승객들이 담요 등을 두른 채 공항에 서 있다. 부산=뉴스1
비상슬라이드로 탈출하는 승객들 탈출한 승객들이 담요 등을 두른 채 공항에 서 있다. 부산=뉴스1

● “우리가 비상구 열어” vs “매뉴얼로 대처”

30일 부산소방재난본부 등에 따르면 불이 시작된 건 28일 오후 10시 15분경으로 추정된다. 당시 기내 뒤쪽 주방에 있던 승무원이 좌석 위 선반에서 불꽃과 연기를 목격해 관제탑에 보고했고 오후 10시 26분 첫 신고가 119로 접수됐다.

승객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날개 뒤쪽 비상구 1개는 승객들이 직접 연 것으로 알려졌다. 앞쪽에 있던 승객 김동완 씨(42)는 “뒤쪽에서 ‘불이야’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밀려왔고 따로 화재 안내 방송은 없었다”며 “앞쪽 비상문이 개방돼 탈출했고 꼬리 쪽에선 승객들이 직접 문을 열고 탈출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일부 승객들도 “문을 열어 달라고 요청했으나 승무원이 응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항공사 측은 기장의 비상 탈출 선포 후 승무원 지시에 따라 승객들이 비상구를 연 것은 매뉴얼상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에어부산 관계자는 “발화 물질의 정체를 몰라 소화기 없이 문을 열면 산소가 유입돼 불이 번질 수 있어 그에 맞게 대처한 것”이라며 “비상구 열에 앉은 승객에게는 비상 탈출 시 승무원의 지시에 따라 (비상구를 여는 등의) 행동을 하도록 사전에 안내하고 동의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일부 항공업계 관계자들도 “비행기 외부에서 난 불이라면 엔진이 작동하고 있어 빨려 들어갈 위험도 있다”며 “화재가 났다고 무턱대고 승객이 문을 열면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저비용항공사 불안감 확산

이번 사고로 저비용항공사(LCC)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29일 무안 제주항공 사고 이후 한 달 만에 다시 LCC 관련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홍콩 여행을 계획했다는 최모 씨는 “무안 사고 때문에 저가 항공사가 조금 겁이 났는데 이번 사고로 너무 불안해 일정을 취소할지 다른 항공편을 이용할지 고민”이라고 밝혔다. LCC 업계 관계자는 “모니터링 결과 설 연휴 전후로 항공권 예약률 관련해서 아직까지 변동은 없다”며 “승객들이 불안함을 느끼지 않도록 안전 관리에도 집중할 예정”이라고 했다.

#에어부산 여객기 화재#비상 탈출#저비용항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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