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직접 주사 ‘가방 항암’까지… 의정갈등 피해는 환자몫”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5일 03시 00분


[의정 갈등 1년]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장
“5년,10년 더 살 환자 치료시기 놓쳐… 병원선 항암 대신 호스피스 권유
초과사망 외면 말고 빨리 해결해야”

“5년, 10년 더 살 수 있는 암 환자들이 지난해 치료 시기를 놓친 탓에 앞으로 1, 2년 안에 돌아가실지도 모릅니다. 이런 죽음은 누가 책임집니까?”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장(63·사진)은 3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의정 갈등 사태에 있어 ‘버티면 이긴다’는 자세로 일관한 정부와 의료계의 치킨게임이 환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회장 역시 2014년 식도암 4기 진단을 받은 암 환자다. 지난해 2월부턴 의정 갈등에 따른 의료공백으로 생겨난 환자들의 피해 실태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는 “지난해 말 폐암 진단을 받은 한 환자는 병원에서 올 하반기(7∼12월)에나 수술이 가능하다는 얘길 듣고 수술 가능한 병원을 수소문 중이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삶의 희망을 더 일찍 접어야 하는 환자도 많아졌다. 김 회장은 “예전엔 병원에서 소생 가능성이 높지 않아도 ‘한 번 더 항암을 해보자’고 했는데, 이젠 임종을 준비하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자고 권한다”고 전했다.

병원이 환자를 돌볼 여력이 줄어들면서 입원 대신 집에서 ‘셀프 치료’를 하는 환자도 적지 않다. 정맥에 주삿바늘을 꽂고 직접 항암제를 투여하는 이른바 ‘가방 항암(자택 항암)’ 환자다. 김 회장은 “혼자 항암제를 투여하다가 갑자기 열 발진이 나거나 부작용이 생겨 병원으로 이송되는 환자들도 있다. 모든 위험을 환자와 보호자가 감당하고 있다”고 했다.

암 환자들에게 지난 1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때보다도 힘든 시기였다. 김 회장은 “코로나19 유행 땐 응급실, 중환자실 등 필수의료가 유지됐지만 지금은 의사와 병상이 없어 치료 기회를 놓치는 환자가 많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응급실 환자 표류, 대형병원 수술 감소 등 환자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의료대란은 없다”고 강조해 왔다. 김 회장은 “정부가 드러나지 않는 조용한 죽음, 지연된 죽음을 외면하고 있다. 의사 2000명 늘리려다가 환자 2000명이 죽어 나간 셈 아니냐”고 반박했다. 그는 “암 환자들이 수술이나 항암치료가 지연된다고 당장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반년씩 수술이 밀려 암이 전이됐거나 손쓸 수 없게 된 환자들의 예후는 크게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김 회장은 “정부와 의료계가 초과사망 규모를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올해 의대 정원을 늘렸고, 의료계는 필수의료 보상 강화 등 원하는 걸 일부라도 얻었다. 이 싸움의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가 감당하고 있다”며 의정 갈등의 조속한 해결을 당부했다.

#의정 갈등#셀프 치료#가방 항암#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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