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려고” 학회서 보톡스-필러 배우는 소아과 의사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16일 19시 12분


16일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에서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진료영역 확장을 성공시키기 위한 실전 아카데미’를 주제로 진행한 춘계 학술대회의 모습. 의료계에서 대표 ‘기피과’로 꼽히는 소아청소년과의 의사들이 소아청소년 환자만 진료해선 병원 운영이 어렵다고 보고 학술대회를 열어 피부미용 시술 및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 환자를 치료하는 ‘출구 전략’을 세웠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꾸준히 보톡스 시술을 받아온 환자에게는 보톡스 용량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환자에게 ‘이를 꽉 깨물어보라’고 했을 때 턱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면 용량을 적게 사용해도 됩니다.”

16일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소청과의사회)의 제48차 춘계 학술대회. 이날 보톡스·필러 시술 강의를 맡은 A 미용 의원 원장이 보톡스 시술 방법에 대해 설명하자, 객석에 앉아있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은 각자 자신의 턱을 이리저리 눌러보며 강의 내용을 메모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약 500명이 참석한 이날 학술대회의 핵심은 다름 아닌 ‘진료 영역 확장’이었다. 소아청소년과는 수가(건강보험으로 지급하는 진료비)는 낮은 반면 ‘사법 리스크’가 높고, 저출산으로 환자 수가 줄어들고 있어 의료계에선 대표적인 ‘기피 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소청과의사회 차원에서 소청과 전문의들이 어린이 진료가 아닌, 피부 미용 시술에 뛰어들거나 성인 대상 치료에 나서는 ‘출구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여러 강의를 마련한 것이다.

‘쁘띠 성형’-고령층 만성질환 치료 나서는 소아과 의사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보톡스와 필러 시술, 점이나 검버섯 등 제거에 흔히 쓰이는 ‘CO₂ 레이저’ 시술법 등 피부미용 분야의 강의들이 다수 진행됐다. 피부 미용 분야는 대부분 정부의 가격 통제를 받지 않는 비급여 진료로, 의사가 가격을 정하기 때문에 수익 창출에 유리하다.

피부미용 시술 분야로의 진입을 준비하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을 위한 다양한 조언이 이날 등장했다. CO₂ 레이저 시술법 강의를 진행한 B 가정의학과 의원 원장은 “시술 후에 유독 피부가 붉어지거나 따가움을 호소하는 환자에게는 ‘쿨링(Cooling)’을 확실히 해야 한다”며 “시술 전후로 레이저 시술을 한 부위의 사진을 찍어두는 것도 잊지 말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환자들이 치료 이후 불만을 제기했을 때 병원 직원들이 불만을 그냥 자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안된다”며 “환자에게 치료 부위 사진을 보내달라고 하거나 한번이라도 다시 내원하게끔 확인을 해야 뒤탈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외과 전문의지만 현재 개원가에서 보톡스 등의 시술을 하는 C 원장도 이날 강의자로 나섰다. C 원장은 “저도 외과 진료만 고집하면 진료를 볼 환자가 거의 없어서 개원 초부터 여러 학회에서 주최하는 강의를 많이 들으러 다녔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정부에 호소했지만 바뀐 것 없어”

학술대회에선 고혈압과 당뇨, 고지혈증 등 중년이나 고령층에게서 주로 발병하는 질환을 진료하는 노하우도 전수됐다. 한 대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고령층에게 주로 처방하는 약품들의 부작용에 대해서 고령층 환자들의 사례를 제시하며 강의했다.

강의를 듣기 위해 학술대회를 찾은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 원장은 “간판은 ‘소아청소년과 의원’이라고 걸어놓고 있지만 실제로 진료하는 환자 중 80% 이상이 성인이다. 고혈압과 당뇨 환자 진료, 수액 치료 등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 병원이 아닌 전문의 1명이 진료하는 소아청소년과 의원은 어린이 환자만 진료해서는 먹고 살 수가 없다”며 “어린이 진료 외 다른 영역의 진료를 배우기 위해 매주 주말마다 관련 강의를 들으러 다닌다”고 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배순호 소청과의사회장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소아청소년 진료만 해도 병원을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정부에 10년 넘게 이야기했지만 그동안 전혀 바뀐 게 없다”며 “이제는 소아청소년 진료를 기본으로 하되 그 밖의 영역으로 진료 분야를 확장하지 않으면 도저히 병원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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