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해운대 부산’ 호텔 신축 공사장의 화재 현장 모습. 2025.02.14 부산소방재난본부 제공
“화재로 5명이 숨졌다는 뉴스를 보면서도 내 남편 이야기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1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의 한 장례식장. 이틀 전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해운대 부산’ 리조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화재로 숨진 60대 근로자 김모 씨의 가족은 오열했다.
유족에 따르면 김 씨는 2021년경부터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고 한다. 그전에는 20여 년 동안 공공기관에서 공연 기획 관련 업무를 해왔다. 그러다 퇴직한 뒤 가족들 몰래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근로자로 일했다고 한다. 김 씨는 용접이나 도장 같은 전문 기술이 필요한 작업에는 나설 수 없어 자재 관리와 현장 청소 등을 했다. 반얀트리 현장에서 일한 것은 지난해 12월부터다. 가족들은 “불이 난 뒤 4시간이 지나서야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며 “검게 그을린 (김 씨의) 얼굴을 보고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며 울었다.
가족들은 “누구보다 가정적이었던 사람”으로 김 씨를 회상했다. 한 달 치 월급을 모아 본인의 교통비를 빼고 모두 부인에게 건넸다고 했다. 공공기관 퇴직 후 형편이 넉넉한 것은 아니어서 몸에 파스를 붙인 채 매일 오전 현장으로 출근했다고 한다. 딸은 아버지가 차가 없는 청년들의 출퇴근을 위해 자신의 차에 태워 세심하게 챙겨왔다는 이야기를 장례식장에서 들었다며 “동료들로부터 존경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딸은 “아버지가 예전에 했던 공연 기획 업무에 자부심을 느꼈다”고 했다. 김 씨는 과거 배우로 직접 무대에 서기도 했다고 한다. 딸은 김 씨가 생전에 자신의 휴대전화에 기록한 ‘그래도 과거는 있었다’는 일기 형태의 메시지를 보여주며 “이 과거가 공연 기획을 할 때를 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퇴직 후 공연 관련 일을 다시 하는 것을 꿈꿨으나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김 씨의 딸은 “무뚝뚝한 ‘경상도 딸’이어서 사랑한다는 표현을 충분히 못 한 게 후회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원도 여행을 가는 차 안에서 ‘밥 먹자’ 등 서너 마디만 건넬 정도로 살갑지 못했다. 진작에 좀 잘 할 걸”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가족들은 김 씨의 사망 이후 사측의 태도에도 분통을 터뜨렸다. 딸은 “시공사는 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기 어렵다는 말을 되풀이한다”며 “보상과 합의부터 운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빠와 같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건설 현장 노동자는 더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반얀트리 호텔 화재로 김 씨 등 6명의 현장 작업자가 숨졌다. 경찰은 17일 이들에 대한 부검을 진행하고 시공사와 현장 책임자 등을 상대로 구체적인 사고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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