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득 볼링칼럼]84년 아시아선수권서 5인조 첫금메달

  • 입력 1996년 12월 3일 19시 59분


한국볼링의 국제대회 참가는 80년대 들어 본격적인 러시를 이뤘다. 지난 78년 방콕아시아경기에서 첫 금메달을 따낸 우리 선수들은 자신감을 얻은 듯 80년대 각종 국제대회에서 유감없는 실력을 발휘했다.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최초의 5인조 금메달을 따낸 지난 84년 제8회 아시아볼링선수권대회. 우리 선수들은 강도인(현 대한볼링협회 전무이사)을 비롯, 현재 한국프로볼링 1기생으로 활약하고 있는 변용환 유청희와 서범석 문상명 등이 출전했다. ▼ 1점차 우승 절호기회 ▼ 5인조 마지막 게임때였다. 한국은 이미 아홉번째 프레임에서 스트라이크를 쳤지만 마지막 프레임에서 스트라이크 세개를 내리 쳐야만 1점차로 우승할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한국팀 앵커는 유청희. 예상대로 그는 침착하게 2개의 스트라이크를 붙여 선수단을 들뜨게 했다. 이제 스트라이크가 하나만 더 터지면 우승이었다. 앞서고 있는 필리핀 코치나 선수들은 물론 우리들도 모두 마른 침만 삼키며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드디어 마지막 투구. 장내는 일순 정적에 휩싸였고 유청희의 표정은 더할 나위없이 굳어 있었다. 힘차게 릴리스한 볼이 레인 위를 시원하게 가르며 1,3번 존을 정확하게 가르는가 싶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맨 오른쪽 끝의 10번핀이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하면서도 안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관중석에선 안타까움과 탄식이 흘러나왔고 유청희는 무릎을 꿇은 채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 10번핀 마침내 무너져 ▼ 그때였다. 한참을 혼자서 떨고 있던 10번 핀이 마치 고목나무 쓰러지듯 넘어지는 것이 아닌가. 순간 경기장엔 떠나갈 듯한 함성이 터졌고 우리 선수들은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유청희는 이어 아시아지역 최초의 오픈대회인 싱가포르오픈 슈퍼클래식대회에서도 89년 초대 챔피언에 오르는 등 유난히 그곳 재키스볼링장(현 오차드볼링장으로 개명)에서 강한 한국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김 갑 득 (한국프로볼링협 전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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