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스포츠명암/야구]박찬호 對 선동렬

  • 입력 1996년 12월 11일 20시 16분


「張桓壽기자」 ▼박찬호-메이저리그 사로잡은 「코리안특급」▼ 올 4월7일 점심시간 무렵. AP AFP 로이터 등 세계 유수의 통신사가 미국 로스앤젤레스발 뉴스를 일제히 토해내기 시작했다. LA다저스의 「오리엔탈 특급」 박찬호(23)가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승리투수가 됐다는 기사였다. 국내 언론도 박찬호의 쾌거를 모두 톱기사로 처리하는 등 대대적인 보도를 했음은 물론이다. 어떤 야구인은 이를 『월드컵 축구에서의 1승과 맞먹는 쾌거』라고 평가했다. 이날은 특히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한 선동렬(33)이 오후에 첫 세이브를 올려 한국야구사에 기념비적인 하루가 되기도 했다. 박찬호는 당시 스프링캠프에선 메이저리그에 진입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했던 상태. 그런 그가 중간계투이긴 했지만 시카고 커브스의 리글리구장 원정경기에서 4이닝 무실점 승리의 쾌거를 이룬 것.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박찬호는 에이스 라몬 마르티네스의 초반 부상공백을 훌륭하게 메우며 선발과 중간을 가리지 않고 전천후로 등판, 차곡차곡 승수를 쌓아나갔다. 전반기가 미처 끝나지도 않은 6월20일에 이미 5승. 10승 투수의 영광도 충분히 가능할 듯했다. 박찬호는 그러나 더이상의 승수를 보태지는 못했다. 또 「제5선발」의 자리를 굳히는 데도 실패했다. 그러나 박찬호는 올해 「풀타임 메이저리거」라는 소중한 열매를 땄다. ▼선동렬-방어률 5.50 추락한 「나고야 폭격기」 떠날 때와 돌아올 때의 마음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올초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 선동렬의 기분은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았다. 비록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지만 아무리 못해도 20세이브는 충분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시즌 직전 갑작스런 모친상을 당한 선동렬은 연이은 부상과 일본 타자들의 집중 공략에 어이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시즌 성적은 방어율 5.50에 세이브보다 오히려 승수가 많은 5승1패 3세이브. 기대가 컸던 탓에 실망도 컸지만 팬들은 내년 시즌 「나고야 폭격기」 선동렬의 화려한 재기를 다시 한번 기대하고 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