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마라톤]안톤 막판질주『영웅탄생』…이봉주 13위

  • 입력 1997년 3월 16일 20시 03분


[경주〓특별취재반] 코오롱 「정봉수사단」과 스페인 「모스타자사단」의 양파전으로 전망된 97동아국제마라톤 겸 제68회 동아마라톤대회. 결과는 스페인측의 완승. 아벨 안톤(스페인)의 완벽한 승리 앞에선 2위 반데레이 리마(브라질)조차 조연배우에 불과했다. 줄곧 선두그룹의 맨뒤를 고집하던 안톤은 경주역앞을 지나 40㎞지점에 이르자 그동안 비축해둔 힘을 한꺼번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마라톤 풀코스에 첫 도전한 지난해 베를린국제마라톤에서 곧바로 우승컵을 따낸 「중고신인」 안톤의 최대강점은 누구보다 싱싱한 근육. 35세의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40㎞지점에서 13명의 선두그룹을 박차고 나온 리마가 앞으로 빠지는가 했더니 어느새 안톤이 뒤를 따라붙었다. 안톤은 그러나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며 2위그룹과의 차이를 확인하기만 하던 안톤은 경주시민공설운동장앞 2백m지점에 이르러서야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역전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스타디움 입구에서 리마는 순식간에 뒤로 멀어졌다.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동아국제대회의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한껏 기대를 모았던 이봉주 김완기 김이용의 코오롱 트리오는 길가에서 연호하는 경주시민과 국민들의 뜨거운 눈길을 뒤로 한 채 35㎞지점부터 하나둘 뒤처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차세대 유망주 김이용이 7위, 장기식(상무)이 8위, 백승도(한국전력)가 10위, 이선춘(제일제당)이 11위에 랭크돼 한국마라톤의 앞날이 그리 어둡지만은 않음을 확인해 주었다. 이번 대회는 오전 11시 기온이 섭씨 5.1도로 뚝 떨어진데다 오후 1시쯤엔 초속 6.5m의 맞바람이 불어 호기록 작성의 꿈은 무산되고 말았다. ▼출발∼15㎞ 레이스가 시작된 오전 11시 경주는 이틀간 내린 진눈깨비가 그치긴 했지만 섭씨 5.1도, 습도 78%로 레이스하기엔 쌀쌀한 날씨. 바람조차 초속 3.6m로 기록경쟁은 어려워 보였다. 출발총성에 따라 경주시민공설운동장을 박차고 나간 7개국 82명(여자 15명 포함)의 세계 건각들은 한덩어리가 돼 달려나갔다. 스페인의 국제매니저 미구엘 모스타자가 데려온 페이스메이커인 카를로스 몬테이로, 파울로 카타리노(이상 포르투갈)가 앞에서 시원하게 스피드를 냈다. 이봉주 김완기 김이용 후스다도 리마 메코넨 마티아스 등 건각들은 30여명의 선두그룹에 섞여 가슴벅찬 질주를 했다. 그러나 6㎞지점을 지나 보문호반에 이르자 부슬비가 다시 내려 선수들의 마음을 어둡게 했다. ▼15∼25㎞ 선두그룹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국내 일반 참가선수 7,8명이 뒤처질듯 하면서도 초청선수들의 앞뒤를 에워싸며 선전을 펼쳤다. 그러나 20㎞지점을 지날 때 선두그룹의 기록은 이미 1시간03분07초대. 황영조의 한국최고기록 수립 당시 20㎞ 통과기록(1시간34초)에 2분30여초나 뒤졌다. 또다른 페이스메이커 벤슨 마샤(케냐)는 줄곧 선두그룹에만 있었지만 몬테이로와 카타리노는 5백여m앞까지 치고나가 기록경쟁을 부추겼다. 25㎞지점에서 안톤이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서 손바닥이 까졌지만 곧바로 일어나 선두그룹에 합류하는 투혼을 보였다. ▼25∼35㎞ 날씨때문일까. 그 누구도 앞으로 뛰쳐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하나둘 선수들이 이탈하기 시작한 선두그룹은 30㎞지점에서 15명으로 줄어 서서히 긴장감을 더했다. 몬테이로와 카타리노는 30㎞지점 조금 지나 물을 마신 뒤 곧바로 버스를 세워 탑승하는 것으로 임무를 완수. 그러자 마샤가 속도를 높이는가 했지만 곧바로 요수아 키마이요(케냐)와 이선춘이 다시 앞서며 본진과 7,8m 차이로 2㎞이상을 이끌었다. 코오롱 선수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이봉주 김완기 김이용이 선두그룹을 지켰다. ▼35㎞∼골인지점 36㎞지점에 이르자 김완기가 숨을 헐떡이며 먼저 뒤로 처졌다. 뒤이어 이봉주의 발걸음이 무거워지더니 선두권에서 멀어져갔다. 순간 한국 선수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38㎞지점에선 김이용이 가벼운 구토를 하며 허리를 굽혔다. 그러나 김이용은 죽을 힘을 다해 끝까지 달렸다. 하지만 20m 이상의 차이를 극복하고 선두그룹에 합류한 김이용은 더 이상 앞으로 치고 나가지는 못했다. 이제 외국 초청선수들의 독무대. 40㎞지점에서 리마가 승부수를 던지자 안톤, 메코넨, 마티아스, 키마이요 순으로 마지막 역주가 계속됐다. 그리고 안톤의 「영웅탄생」으로 레이스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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