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기록은 저조했지만 세계 정상의 마라톤 축제로 손색이 없는 레이스였다.
특히 쌀쌀한 날씨와 세찬 바람속에서도 세계적인 철각들이 막판에 펼친 치열한 순위다툼은 마라톤의 묘미로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번대회에서 1,2위를 차지한 96베를린마라톤 우승자인 아벨 안톤과 96도쿄마라톤 우승자인 반데레이 리마를 비롯해 한국의 이봉주와 김이용, 동아국제마라톤 원년챔피언인 마누엘 마티아스, 96후쿠오카마라톤 준우승자인 알베르토 후스다도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40㎞지점까지 무리를 이루며 엮어낸 「드랙 앤드 스퍼트(Drag And Spurt)」, 즉 「끌고 따라붙는」 레이스가 흥미진진했다.
다만 이들 세계적인 마라토너간의 극심한 눈치작전으로 인해 초반레이스를 너무 안일하게 이끌어 신기록 달성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초반부터 포르투갈의 파올로 카타리노와 카를로스 몬테이로가 선두그룹을 형성하며 앞서 나갔지만 이들이 「페이스메이커(Pacemaker)」임을 눈치챈 노련한 선수들이 막판까지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
이들 「페이스메이커」가 어느 정도 간격을 두면서 세계적인 선수들을 분발시키는 계기를 만들었어야 하는데 초반부터 전력질주로 수백m를 앞서가다 30㎞지점에서 포기하는 바람에 레이스 자체가 기록보다는 순위경쟁이 되고 말았다.
런던이나 보스턴마라톤 등 큰 대회에서는 선수층이 두꺼운 케냐나 에티오피아 등이 「페이스메이커」를 내세우는데 수준급 선수들이 많지않은 한국으로서는 몇명의 간판선수에게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레이스운영에 어려움이 더했다.
기대를 모았던 이봉주는 막판스퍼트에서 밀리는 점을 감안, 25㎞지점이후 승부를 걸어야 했으나 무릎이 안좋은 탓인지 특유의 질주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김이용 장기식 백승도 이선춘 손문규 등 국내선수들이 나란히 15위안에 든 것은 칭찬할 만하다. 앞으로 이들을 어떻게 다듬느냐가 한국마라톤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