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처음 찾은 얼음판. 쿠당탕 미끄러진 몸이 얼음판에서 튀어나가 하늘로 솟구치는 꿈을….
그때는 무섭기도 했다. 그러나 그 짜릿한 기분만큼은 잊을 수가 없었다.
어느새 소년은 강하고 빠른 것을 사랑하게 됐다. 음악도 리듬 앤드 블루스는 답답하기만 할 뿐. 좀더 비트가 강한 것이 필요했다.
소년의 어릴 적 꿈이 어느새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 빙상의 희망 이규혁(19·고려대1). 고교 3년때인 작년 2월14일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97세계선수권대회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백m에서 89년의 배기태 이후 8년만에 한국에 금메달을 안긴 주인공.
그러나 그때만 해도 ‘얼음판의 신동’ 정도로만 여겼다. 그런 그가 1년만에 세계적인 스프린터로 우뚝 섰다. 작년 11월에는 불과 한 달 동안 1천m에서 세번이나 세계신기록(1분10초42)을 갈아치웠다.
다음달 7일 막오르는 98나가노 동계올림픽. 한국이 이규혁에게 동계올림픽스피드스케이팅의 첫 금메달을 기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규혁은 겉보기엔 평범한 선수. 1m77에 73㎏. 선수치곤 가냘픈 몸매. 게다가 안경까지 썼다. 막판 폭발적인 스퍼트에 비해선 초반 스타트가 늦은 것도 흠이다.
그러나 그가 이 모든 불리함을 극복하고 최고의 스타로 성장한 것은 ‘빙상가족’의 전폭적인 후원과 ‘마법의 신발’ 클랩스케이트가 있었기 때문.
이규혁은 작년 7월 캐나다 전지훈련때 외국선수들이 클랩스케이트를 신은 것을 보고 네덜란드 바이킹사에 주문했다.
그러나 발(2백65㎜)에 맞지 않아 더 큰 것으로 새로 주문한 뒤 스케이트 날을 떼어냈다. 이것을 원래 신던 일제 스케이트의 신발부분과 조립했다.
10월부터 이 스케이트로 바꿔신은 효과는 의외로 빨리 왔다. 이규혁은 11월6일 캐나다에서 열린 종별빙상경기 1천m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웠고 23일과 24일에는 이틀 연속 세계신기록을 경신했다.
이규혁은 2일 대표팀과 함께 캐나다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지금 그는 캘거리의 매서운 겨울 바람을 헤치며 다시 꿈을 꾼다. 한달 후 나가노에서 금빛 찬란한 메달을 걸고 있는 꿈을….
〈장환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