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부부싸움뒤엔 이곳에 가보자]대명리 포구 약암온천

  • 입력 1998년 1월 8일 20시 42분


짭짤한 겨울 바닷바람, 온몸을 녹여주는 펄펄끓는 온천물, 그리고 따끈한 커피한잔…. IMF 여파로 겨울휴가 중인 회사원 김병식씨(32·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이번 휴가는 회사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생산라인별로 순환휴가제를 실시한데 따른 것. 감원을 피해보겠다는 취지는 고맙지만 어쨌든 반가울리 없는 타의에 의한 휴가. 그러다 보니 휴가 첫날부터 찌뿌듯한 기분 속에 아내와 사소한 일로 부부싸움을 벌였다. 각자 침대와 거실에서 밤을 보내고 맞은 휴가 이틀째. 바람이나 쐬자며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김포군 대명리 포구 옆에 있는 약암온천. 오전 10시40분 승용차로 홍제동 집을 출발해 정확히 1시간만에 경기 김포군 대곶면 약암리 약암관광호텔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김씨 부부는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12시까지 1층 커피숍에 나와 있어라.” 각자 들어간 호텔 지하 온천탕. 5백여명 수용 규모인 대규모 남탕안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아 김씨는 느긋한 마음으로 이곳 온천의 특징인 광(鑛)염천탕에 몸을 담갔다. 쇳물처럼 짙은 붉은 색 물속에 가부좌를 하고 앉으니 상념이 교차했다. 회사걱정, 결혼3년째인데도 소식없는 2세 걱정…. 하지만 펄펄끓는 붉은 물 속에서 근육이 풀어지면서 차츰 온갖 근심걱정은 달아나고 동시에 벽너머 여탕에 있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물밀듯 밀려왔다.‘내가 너무 옹졸했지.’ 생식기능 강화에 좋다는 미네랄 리튬천과 무좀 습진 등에 효능이 있다는 붉은 광염천탕 속을 왔다갔다하다 보니 이미 12시20분. 상쾌한 기분으로 커피숍에 올라가 보니 얼굴이 뽀얘진 아내는 물만 한잔 달랑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왜 커피라도 시켜 마시지 그랬어.” “괜히 돈 쓰면 뭐해.” 커피 한잔에 세금 봉사료 합해 3천5백원. 1급호텔답게 깨끗하고 전망 좋은 커피숍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그리 비싼 것도 아닌데 그걸 아끼려고. 온천에서 대명리 포구까지는 약1.5㎞. 승용차로 이동하는 3분간 김씨 부부가 나눈 대화라곤 “여탕엔 사람 많드냐” “아줌마들 좀 있지 뭐”가 전부. 강화해협을 사이에 두고 강화도와 마주하고 있는 포구. 횟집이 즐비해 좀 어수선하고 해병대에서 해안선을 따라 철책선을 쳐놓은 것이 흠이었지만 시린 바닷바람 속에 갈매기가 떼지어 날고 어선들이 들락날락하는 정경이 마음에 들었던지 아내는 어느새 김씨의 팔짱을 깊게 끼고 있었다. ‘삼식이’ 매운탕이라는 독특하고 얼큰한 매운탕으로 속을 풀고 통나무집 카페에서 나무향내에 섞인 커피 내음을 음미한 뒤 서울로 돌아오는 차안. 아내는 어느새 수다쟁이로 되돌아가 있었다. “그 붉은 물 신기하더라. 손에 습진이 다 나은 것 같애.” 대꾸없는 김씨에게 아내의 재촉. “여보, 뭐 생각해?” 김씨는 몇년전 본 ‘프라하의 봄’ 영화의 마지막 대사를 흉내내볼까 고민중이다. “I am thinking how happy I am.” 〈김포〓이기홍·이승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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