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실업연맹소속 13개팀중 금융팀을 제외한 7개팀이 연맹을 탈퇴,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을 설립한 것이 96년 10월. 그로부터 1년4개월만에 결실을 보게되는 셈이다.
그러나 당초 그렸던 그림보다 많이 달라졌다. 한국화장품 코오롱 대웅제약이 연달아 해체되는 바람에 WKBL엔 4팀만 남았다. 국제통화기금(IMF)한파의 와중에서 용병 수입계획도 취소됐다.
4팀만으로는 프로출범의 모양새가 좋지않은 터에 신용보증기금이 동참을 약속했고 국민은행과는 협의중. 겨울과 여름에 한차례씩 대회를 열고 경기장소는 광주 의정부 안산 충주 삼천포 등 5개도시다.
이가운데 광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중소규모의 도시. 대도시 개최를 원칙으로 하는 남자프로농구와는 대조적이다. ‘남자농구와 맞붙으면 승산이 없다.남자경기가 열리지 않는 곳에서 싹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 여자농구 관계자들의 살아남으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동안 여자프로농구 출범에 대한 대체적인 시각은 회의적. “금융단 농구를 다 죽이면서까지 굳이 할 필요가 있는가” “취업의 문이 좁아져 여고농구가 고사할지도 모른다”등이 이들의 지적이었다.
WKBL의 조승연 전무는 “함께 주저앉아 여자농구 최후의 날을 맞을 수는 없다. 다 살 수가 없다면 일부라도 살아남아 회생을 기약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IMF시대의 생존전략과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성공여부는 불투명하다. 프로화를 앞장서 끌어온 인사들조차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며 말꼬리를 흐릴 정도다. 요즘 이들의 얼굴엔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다. 여전히 스탠드가 썰렁할 경우 여자농구의 몰락을 재촉했다는 비난을 뒤집어써야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출범은 확정됐다. 그동안 여자프로농구를 찬성한 이든, 반대한 이든 이제 여자농구의 르네상스를 위해 힘을 보태야할 때다.
〈최화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