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눈깨비가 어지럽게 흩날리는 나가노 스노 하프 코스. 한 흑인 선수가 비틀거리며 결승선을 통과하자 한 백인 선수가 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흑인선수는 케냐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필립 보이트였고 그의 손을 잡아준 사람은 동계올림픽에서 남자선수로는 최초로 6개의 금메달을 따낸 비외른 달리(31·노르웨이)였다.
“끝까지 완주하는 것을 보니 너무 기쁘다”는 달리는 “이 모습은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힘을 주게 될 것”이라며 보이트의 어깨를 꼭 껴안았다.
12일 열린 98나가노 동계올림픽 크로스컨트리 남자 10㎞ 클래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달리는 노르딕 스키 강국 노르웨이의 자존심.
그는 이날 자신감이 넘쳤다. 첫 체크포인트였던 1.8㎞ 지점에서 이미 다른 선수들을 6.3초 앞선 뒤 단 한번도 선두를 뺏기지 않았던 것. 한순간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달렸던 달리는 2위 마르쿠스 갠들러(오스트리아)를 8초차로 여유있게 제쳤다.
달리가 이처럼 공격적 레이스를 펼친 이유는 9일 열렸던 30㎞ 클래식에서 20위에 그쳤기 때문.
달리는 레이스가 끝난 뒤 “8일 밤 나는 왁스를 잘못 선택했다. 9일 갑자기 폭설이 내릴 것에 대비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젯밤은 만반의 대비를 했다. 종류가 다른 2개의 왁스를 준비했다가 경기 직전 날씨에 맞는 왁스를 바른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1m84, 78㎏의 그는 유난히 긴 다리와 발달된 상체로 추위와 웬만한 폭설은 쉽게 견디는데다 보통 사람의 두배 이상인 폐활량을 갖춘 것이 세차례나 올림픽에 나설 수 있었던 비결.
그는 새로운 꿈에 부풀어 있다. 리디아 스코블리코바(소련), 류보프 에고르바(러시아·이상 여자)와 함께 똑같이 개인통산 금메달 6개를 기록한 그는 이번대회 15㎞추발(14일)과 40㎞ 계주(18일), 50㎞ 프리스타일(22일)에서 새로운 신기원을 이룩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나가노〓장환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