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궁핍의 시대’. 옷깃을 여미고 또 여며도 제 몸 하나 추스르기 버거운 계절. 한번 보고 스쳐지나도 그만이련만, 사람들과 그들이 살다간 흔적을 더듬고 살펴 한번 더, 사람사는 동네의 그 깊은 속내를 빤히 들여다보는 나그네들.
세계여행 18번에 여행시간만 13년. 여기에 여행거리 ‘지구 28바퀴’의 기록을 남긴 김찬삼씨(72). 그리고 건축가 원대연씨(55). 두 사람이 ‘읽으면 보이는’ 여행기를 선보였다. 마치 잔잔한 호숫가에 어린 저녁풍경을 한뜸한뜸 정성껏 그릇에 떠 담듯.
김씨의 ‘가자 해를 따라 서쪽으로’(디자인하우스)와 원씨의 ‘찾아보며 생각하며’(플러스 문화사 펴냄).
김씨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빗대, ‘해를 따라 서쪽으로’라고 책제목을 정했다. 폴로의 여정(旅程)을 역으로 거슬러 가자는 뜻. 지는 해를 따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아시아에서 시작해 이제는 역사의 뒷장으로 사라진 ‘죽의 장막’ ‘철의 장막’을 거쳐 저 유럽의 끝까지.
그래서 구성된 게 아구(亞歐)답사단. 평균연령 63세의 노익장 다섯명이 92년부터 1년 동안 유라시아 35개국 7만㎞를 훑었다. 이번에 나온 ‘황허의 물은 천상에서 흐르고’(제1권)와 ‘실크 로드를 건너 히말라야를 넘다’(2권)는 이 대하기행의 중국편.
눈앞에 펼쳐지는 고비와 타클라마칸 사막, 티베트 고원과 히말라야의 만년설. 그 속에서 살아 숨쉬는 오아시스 마을…. 중국이 그 큰 가슴으로 품어온 세가지 색, 황색 흰색 녹색의 바다에 몸을 던진다.
평생을 떠돌아온 저자. 그의 여행기에는 특유의 문화적 프리즘에 여과된 철학과 학문적 축적이 농익어 있다. 또다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라는 평.
황허의 지류에 접한 뤄양(洛陽). 때마침 4월이라 모란이 만발한 왕성공원에 들른 저자. 뤄양이 모란성(牡丹城)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여북하면 송대의 문인 구양수가 ‘모란이 가장 반기는 낙양의 토양’(‘낙양모란기’)이라고 읊었을까.
하지만 이 책의 묘미는 딴 데 있다. 단순히 풍물을 ‘전사(轉寫)’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모란이 왜 눈물겨운 화려함인지, 그 아픔의 연유를 역사적 맥락에서 집어낸다.
‘장안에 봄이 떠날 무렵/덜컹덜컹, 마차가 지나간다./사람들은 이제 모란이 제철이라며/너도나도 모란을 사러 가는데/… 짙은 빛의 모란 한 다발 값이/시골 열 집의 세금인 줄을 아는지 모르는지….’〈백거이의 ‘매화(매화)’〉
건축가 원대연의 ‘찾아보며 생각하며’. 한마디로 여행 넘어서기다. 되돌아 서 한켜만 벗겨보면 금세 빛이 바래는 눈요기 여행이나, 숙제하듯 해치우는 이런저런 테마여행 훌쩍 넘어서기.
문화의 보고, 디자인의 꽃밭이라는 유럽. 그의 밝은 눈은 요소요소를 찌른다.
살아 있는 건축박물관 바르셀로나(스페인). 시간이 멈춰선 고도 로텐부르크(독일). 인상파 회화의 고향 생 폴 데 방스(프랑스). 도시 한가운데 떠 있는 오아시스 퀸시 마켓(미국)….
저자는 이탈리아에서 유럽의 ‘전부’를 보았다. 밝은 하얀색 벽과 구부러진 골목길, 복잡하게 이어지는 계단과 골목 어귀의 ‘작은 공간들’(포켓 스페이스)…. 그는 건축에서 ‘여기도 사람이 살아가는’ 실핏줄의 온기를 느낀다.
평생 사진기 보따리들을 멍에처럼 지고 다니는 저자. 그는 말한다. “어디를 가나 배울 것이 넘치니 세상은 정말 살만한 것 같아….”
〈이기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