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승을 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13일 알파인 스키의 꽃인 남자 활강 챔피언에 오른 장 뤽 크르티에(32·프랑스)는 시종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활강경력 5년의 무명선수. 회전이 주종목이었던 그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던 동료선수 뤽 알팡의 영향을 받아 93년 활강으로 종목을 바꿨다.
87년부터 월드컵투어에 참가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고향인 알베르빌에서 열린 92년 올림픽에선 복합 4위가 최고의 성적. 슈퍼대회전에서는 25위에 그쳤다. 활강으로 바꾼 뒤 94릴레함메르대회에선 24위.
그는 95년 겨울 동료들과 배구경기를 하다가 왼쪽 정강이뼈가 부러졌다. 이 후유증으로 이듬해 4월 최소 2년간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까지 받았다.
그렇다면 그는 아직 정상의 몸이 아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크리스티앙 게디나(이탈리아)와 안드레아스 시퍼러, 프리츠 스트로볼, 그리고 이날 실격당한 헤르만 마이어(이상 오스트리아) 등 쟁쟁한 스타들을 따돌리고 우승할 수 있었을까.
우선 하늘이 그를 도왔다. 폭설과 강풍으로 활강경기가 두차례나 연기되는 바람에 슈퍼스타들은 진이 빠졌다.
게다가 ‘죽음의 코스’로 불린 하쿠바산의 활강코스는 간밤에 내린 비로 곳곳에 빙판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날 43명의 선수중 완주한 선수는 28명뿐. 마이어는 레이스 초반 미끄러져 실격당했고 루카 카타네오(이탈리아)는 다리를 다쳐 병원으로 후송됐다.
크르티에는 이를 감안, 욕심내지 않고 안정된 자세로 레이스를 펼쳤는데 이 작전이 적중한 것.
그러나 정작 그에게 힘을 불어넣어준 사람은 여덟살배기 아들 피에르와 아내인 프랑수아즈. 크르티에는 “힘들 때마다 앞으로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을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크르티에는 내년 세계선수권대회가 끝난 뒤 은퇴, 4월 아내에게 뒤늦게 면사포를 씌워줄 계획이다.
〈나가노〓장환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