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도덕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SK증권은 97∼98농구대잔치 챔피언입니다. 우승팀으로서의 책임도 있는 것 아닙니까?”
12일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사무실. SK증권 해체에 따른 대책을 논의하던 조승연 전무는 끊이지 않는 보도진의 전화에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평소 그의 온화한 성품과는 달리 상당히 격앙된 모습이었다.
문화체육부의 법인인가를 눈앞에 둔 10일 SK증권의 돌연한 해체결정. 23일의 여자프로농구 출범을 코앞에 두고 터진 이 뉴스는 WKBL 관계자들에게는 청천벽력이나 다름없었다.
타이틀 스폰서 계약, 방송중계 협상, 선수 드래프트 등 바쁘게 돌아가던 업무는 올스톱됐다. 대회를 7월로 연기한다고 했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
국제통화기금(IMF)한파가 시작된 이래 많은 팀이 간판을 내렸다. 여자농구에서도 한국화장품 코오롱 외환은행팀이 잇따라 해체됐다.
그러나 SK증권 해체의 충격은 다른 팀과는 차원이 다르다. 농구대잔치에서 세차례나 우승한 명문팀. 국가대표선수를 4명이나 보유한 강호. 여기에 프로농구 출범을 주도해온 팀이 바로 SK증권이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지난해 2백50억원을 선뜻 내놓고 진로농구단을 인수했다. 올해 입단할 서장훈 1명에게 줄 계약금만도 15억원이나 된다. 여자농구팀의 한해 예산은 10억원 미만.
“부도난 기업도 갖은 어려움을 딛고 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SK그룹에서 부도난 기업이 있습니까. 사정이 어려우면 부동산을 매각해야지 왜 팀을 해체합니까. 그것도 우승팀을….”
SK그룹 관계자도 이렇게 한탄했다. 현재 배구슈퍼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SK케미칼도 대회가 끝나면 해체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SK케미칼이 12일 한수 아래의 흥국생명에 0대3으로 완패한 것도 SK증권 해체의 후유증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세상에 정말 믿을× 없구먼.” SK증권 해체소식에 삼성생명 김재혁 단장이 허탈한 표정으로 내뱉은 이 한마디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최화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