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은빛 십자가가 새겨진 짙은 푸른색의 드레스. 파란색 매니큐어를 칠한 금발의 파샤 그리슈크(27).
조각처럼 다져진 몸매에 그윽한 눈동자의 예브게니 플라토브(31).
둘이 짝을 맞춰 이뤄내는 빙판의 댄싱은 환상과 정열 그 자체였다.
16일 열린 나가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싱에서 완벽한 연기를 펼쳐보이며 금메달을 따낸 러시아의 그리슈크―플라토브조. 이들의 연기는 뛰어난 운동 능력에 서정성과 예술성이 가미된 빙판 위의 예술이었다.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사상 첫 2연패. 89년 처음으로 짝을 이룬 이들은 5년만인 94년 릴레함메르올림픽에서 우승하며 세계 정상으로 군림해왔다.
이번 올림픽 우승으로 최근 22개 대회 연속 우승을 이룬 이들은 그동안 아이스댄싱 부문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워왔다. 세계선수권 4연패(94∼97년), 유럽선수권 3연패(96∼98년) 등 각종 국제대회를 휩쓸어 96년에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으로부터 명예훈장을 받았다.
지난달 열린 98유럽선수권 프리댄스에서는 연기점수에서 모두 4명으로부터 만점인 6.0을 받는 아이스댄싱 사상 초유의 기록을 만들기도 한 이들은 이번 올림픽을 끝으로 프로로 전향할 예정.
특히 ‘금발의 미녀’ 그리슈크는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미국의 명배우 로버트 드니로와의 공연을 제의받을 정도로 엔터테이너로서의 자질도 인정받고 있다.
비록 이들이 빙판을 떠나더라도 아이스댄싱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그리슈크―플라토브조의 업적은 길이 남을 것이다.